
사교육을 하지 않으면 공부를 못 할 것이다, 혹은 안 할 것이라는 지레짐작이 있다. 사교육걱정 회원들이 자녀에게 절대로 사교육을 시키지 않겠다는 결의 같은 것을 했을 리는 없다. 그러나, 사교육을 선택하려고 할 때 정말 필요한 사교육인지 고민하고, 매우 신중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세간의 선입견처럼 사교육 수강과 성적이 정비례하면 회원 자녀들은 대체로 공부를 못해야 할 텐데, 과연 그럴까? 단체의 역사도 만16년이 흘렀고, 초창기 회원 자녀들은 이미 성인이 되었다. 이들은 어떻게 자라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노워리기자단 활동을 하며 가까워진 상근직원 채송아 선생님의 딸이 올 초에 취업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2009년부터 회원으로 활동했고, 2024년 현재 상근활동가로 일하는 채송아 선생님의 딸은 교육운동을 하는 엄마의 철학과 자신의 성장과정을 어떻게 평가할까? 그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어 8월 10일, 아침 일찍 서울행 기차를 탔다.
원지호(이하 지호) :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려요.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정그린(이하 그린) : 안녕하세요? 99년생 정그린이고요. 엄마 덕분에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사교육 걱정 없이 살아왔습니다.
지호 :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서 입사했는지, 그리고 일의 만족도는 어떤지 말씀해주시겠어요?
그린 : 저는 현재 삼성전자 제품사업부에서 UX(User Experience)디자인을 하고 있어요. 대학에서는 시각디자인을 전공했고요. UX디자인은 사용자들이 어떤 서비스를 사용할 때, 그 경험이 조금 더 편리해질 수 있도록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하는 일이에요. 대학교 때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디자인 인력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에 뽑혀서 2년간 활동했어요. 자연스럽게 이 회사 취업 준비를 했고 다행히 입사했습니다.
지호 : 취업 준비하면서 많이 힘들었을 텐데, 삶의 모토로 삼는 좌우명이 있나요?
그린 :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어떻게든 해야지. 하고 싶은 일을 하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자.’ 이런 마인드로 살아요.
지호 : 직장에서 일을 맡으면,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는 편인가요?
그린 : 제가 많은 걸 하고 싶어 해서 일을 맡기면 그 이상을 하려고 해요. 주어진 일만 하기 보단 제가 하고 싶은 걸 찾아서 하기도 하고요. 일을 재밌어하고, 이 과정에 몰입하는 것도 즐거워요.

진로를 정하니까 공부가 훨씬 재밌어져
지호 : 그린님의 학창 시절은 어땠어요? 초중고등학교 시절,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즐거웠어요?
그린 :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할머니랑 목포에서 살다가 상경을 했어요. 목포에서는 할머니가 공부 욕심이 많으셔서 노는 토요일에도 보충수업을 하는 학원에 보내셨어요. 2학년 말에 서울에 와서는 학원을 안 다니게 되니까 놀 시간이 많아졌죠. 친구들이랑 놀면서 자유롭게 보냈고, 엄마 아빠랑 여행도 많이 다녔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 그리고, 만들기 하는 미술 분야에 관심이 많았어요.
중학교 때는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야 해서 힘들었어요. 특히, 수학 점수를 잘 받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어요. 그때는 미술 전공할 생각이 없었고, 좋은 대학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스트레스 때문인지 오히려 공부를 열심히 안 했지만요.
고등학교 때는 여고를 다녀서 친구들이랑 같이 떠들고, 공부도 나름 열심히 했어요. 고1 때 미대에 가야겠다고 진로를 정했어요. 목표가 생기니까 미술학원 다니면서 그림 그리는 것도 너무 재밌었고, 대학에 가기 위한 공부도 훨씬 더 재밌어졌어요.
지호 : 고등학교 때 지금의 진로를 정했다고 했는데, 그 전에는 어떤 일을 하고 싶었어요? 어떤 계기로 미술을 전공하기로 결정했나요?
그린 :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현실적인 고려를 하지 않고 아빠가 한의사였으니까 ‘한의사 멋지다. 한의사 되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어요.(채송아 선생님의 기억에 따르면 그린 님은 초등학교 4학년 때 ‘한의사가 되어서 한의원을 꾸미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중학교 때는 동물을 좋아해서 수의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오래 가지고 있었어요. 사람들의 이야기 듣는 것도 좋아해서 심리학 쪽도 관심 있었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미술 선생님이 미대에 가면 어떻겠냐고 추천해주셨어요. 처음 선생님이 권유하셨을 때, ‘근데, 저는 수의사가 꿈이에요.’라고 했지만요. 그런데 엄마도 제가 미술을 하면 잘할 것 같다고 응원해주셨어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워낙 좋아했고, 미적인 것에 관심이 많다 보니 미술쪽으로 마음이 기울었고요. 미술로 방향을 정하고 나니까, 디자인이 적성에 잘 맞겠다고 생각했어요.
지호 : 고등학교 1학년 말에 미술 전공을 선택했으면 이전에는 미술 관련 활동을 안 했나요? 미술 전공하는 분들은 보통 일찍 준비하잖아요. 고등학교 2학년이면 미술을 시작하기에 늦은 것 같은데 준비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그린 : 그 전에는 전문적인 미술교육은 거의 안 받았죠. 평소에 낙서하고, 친구들 관찰하는 걸 좋아해서 시간날 때마다 그림을 그려서 선물로 주면 친구들이 좋아했어요. 미술을 시작했을 때 늦었다고 크게 걱정하진 않았어요. 부모님께서도 적극 지원하셨고, 그림 잘 그린다는 말을 옛날부터 들어 왔으니 잘할 수 있겠지 생각했거든요.
막상 미술학원에 가니까 잘하는 친구들이 정말 많은 거예요. 특히 고3 때는 시험도 보고 엄격한 평가를 받으니까 ‘잘하는 애들만큼 나도 잘할 수 있을까?’ 걱정했죠. 예고 준비한 애들은 중학교 때부터 훈련 받았으니까요. ‘내가 좀 더 열심히 해서 실력을 빨리 쌓아야 겠다’는 압박감이 있었어요. 시험 볼 때는 밥도 잘 못 먹고 늘 배가 아팠죠.
대학 입시 준비하기 전까지는 실력이 빨리 늘어나니까 좋았는데, 아무래도 본격적인 입시 준비 과정이 힘들었어요. 학원에서 제시하는 실기시험을 해결하는데, 사실, 미술에는 정답이 없잖아요. 학원 선생님들은 ‘이게 맞다, 틀리다. 합격이다, 불합격이다.’라고 말씀하시는데, 100% 맞는 건 아니니까요. ‘내가 이렇게 그리면 대학에 떨어지나?’하는 걱정에 늘 사로잡혀 있었어요. 게다가 입시미술 학원비가 많이 드니까 재수하면 안 된다라는 생각이 있었고요.

공부만 하다보면 하고 싶은 것을 할 시간이 없어
지호 : 입시 준비할 때 많이 힘드셨겠어요?
그린 : 작품에 대해 매번 평가를 받는 게 힘들긴 했는데, 돌아보면 또 아주 그렇게 많이 힘든 것도 아니었어요. 디자인은 내가 하고 싶어서 정한 진로였고, 목표가 뚜렷하니까 다른 공부할 때는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어요. 정확히 말하면 ‘하고 싶은 일을 더 잘하기 위한 길이다’라고 생각해서 입시 공부가 때로 재밌기도 했어요.
지호 : 당시 가장 큰 고민거리는 무엇이었어요?
그린 : 입시에서는 성적을 내야 하니까 등급에 대한 압박과 고민이 컸죠. 매일매일 공부해도 당일에 시험을 못 치면 등급이 낮게 나오니까요.
지호 : 입시 제도가 상대평가로 등급을 나누고 평가하잖아요. 평가 받는 입장에서 어떤 기분이 들었어요?
그린 : 사실 많은 친구들이 상대평가로 등급을 나누고 서열을 가리는 걸 힘들어 해요. 또 내가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시험치는 날 삐끗하면 등급히 확 낮아지니까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죠. 스스로를 탓하게 되니까 건강한 방식이 아닌 거 같아요. 등급을 올리기 위한 공부만 해야 해서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다른 무언가를 할 시간도 없어요. 저는 그림을 좋아해서 전공을 그나마 빨리 선택했지만 목표가 없는 아이들은 그저 좋은 등급이 나올 때까지 매진해야 하니까 안타깝죠.

지호 : 저도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이다보니 제 생각이 자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하거든요. 그린 님과 부모님 관계는 어떠한지 궁금해요. 그린 님에게 아빠, 엄마는 어떤 분이셨어요?
그린 : 무엇보다 굉장히 친밀하고, 정말 행복한 가정이라고 늘 생각해요. 저희 아빠는 퇴근 후에도 혼자 공부를 계속 하시면서 매우 생산적이고 건강하게 사셨어요. 저도 저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했죠. 제가 하고 싶은 걸 찾고, 그걸 스스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기준은 아빠를 보면서 생긴 것 같아요. 당시에는 ‘퇴근하고나서도 왜 저렇게까지 공부를 하시지?’ 의아했어요. 제가 지금 직장을 다녀보니 정말 대단한 실행력이란 걸 알겠어요. 저도 아빠를 따라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면이 있어요.
또, 엄마아빠는 제가 하는 일에 크게 간섭하지 않으셨어요. 성적이 나빠도 채근하지 않고 잘 이해해 주셨어요. 성적을 보시고 너무 속상해하지도, 너무 기뻐하지도 않으셨어요. 성적표를 보여 드리는 게 부담이 없었죠. 제 스스로 성적이 불만족스러운 거지, 부모님이 세세하게 관여하지 않으셨거든요. 제가 뭘 하든 잘 할 거라고 생각하셔서 저도 자연스럽게 잘 할 거라고 생각한 거 같아요.
지호 : 그린 님을 믿어 주신 거네요?
그린 : 네, 그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제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셨어요. 제가 힘들다고 하거나 뭐가 재밌다고 하면 유심히 들어주셨어요. 제가 평소에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니까 미대로 진로 고민할 때 엄마가 먼저 지지해주신 거겠죠? 기본적으로 저를 믿어주셔서 제가 잘 성장한 게 아닐까 생각해요.
지호 : 채송아 선생님께 그린 님이 어떤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면서 키우셨냐고 여쭤 보니까,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자기를 성찰하고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바라셨다고 해요. 이런 어머니의 바람이 지금 그린 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그린 : 사실 엄마가 그런 양육관을 갖고 있는지는 몰랐어요.(웃음) 자세히 알지는 못했지만 자기 스스로 공부하도록 생활의 주도권을 저에게 주셨어요. 고등학교 때부터는 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인강이든 현장 강의든 선택할 수 있게 하셨고요. 미술을 선택했을 때 지지해 주는 모든 과정이 제가 뭘 하고 싶은지 스스로 고민하고 찾아가는 데 당연히 반영이 됐다고 생각해요. 제가 심리검사를 해보면 자아 성찰 점수가 되게 높거든요. 엄마가 그런 생각으로 저를 양육했다면 그런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스스로 계획하고 선택하는 기쁨이 있어
지호 : 어머니께서 오랜 시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회원으로 활동하셨잖아요. 그 활동이 그린 님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나요?
그린 :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말하는 게 ‘사교육을 무조건 하지 마!’는 아니잖아요. ‘너에게 정말 꼭 필요하고, 원하는 사교육을 해.’인 것 같아요. 중3때 수학학원에 처음 다니기 시작했는데, 몇 개월 다니다가 나에게 더 이상 도움이 안되겠다 싶으면 과감히 그만뒀어요. 커리큘럼을 다 짜 주는 학원에 가지 않으니까 제가 무얼 하고 싶고, 어떻게 공부할지 스스로 계획을 짜고 자기 주도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유익이었어요.
대학에서 수강시간표를 짜는 것이나, 진로를 정하는 것, 직장에서 일하는 것 모두 다 스스로 해야 하는데, 초중고 때 그런 자세를 키워 놓지 않아서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친구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저는 어렸을 적부터 계획을 스스로 짜고, 무언가 필요하면 제가 선택했거든요. 제가 엄마한테 ‘인강 이거 듣고 싶어’, 고3 때는 ‘(대치동)현장강의 가고 싶어.’ 하면 엄마가 ‘난 사교육걱정없는세상회원인데 대치동 강의는 안돼! 무슨 소리하는 거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입시를 준비하는 고3 입장에서는 현장강의와 인강에 만족도가 굉장히 높았어요. 더 어려운 문제를 풀고 싶어서 간 거니까 재미있었거든요. 인강도 제가 하고 싶은 것만 골라 들을 수 있어서 효율적이었고요. 이런 것들이 좋은 시너지를 낸 것 같아요.
지호 : 인터뷰를 보는 다른 부모님들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활동을 추천 하실 의향이 있으신가요?
그린 : 그럼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사교육을 무조건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자녀가 필요하다 느낄 때 해도 충분하다는 거잖아요. 그래야 스스로 공부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사교육 없이도 무언가 할 수 있고 거기에도 나름의 길이 있으니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활동을 추천해요. 저는 사교육 걱정 없이, 스스로 제 삶을 주도할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그래서 추천드려요. 진심으로!
지호 :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말씀해 주시겠어요?
그린 : 저는 저의 학창 시절이 굉장히 만족스러워요. 내가 원하는 대학에 가고, 취업에 성공하는 성과를 내서 만족하기도 하지만, 학창 시절부터 스스로 계획하고, 실천했던 게 지금 무언가를 이룰 수 있는 기반이 된 것 같아요. 제가 이런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어서 굉장히 감사해요. 제 자신도 기특하죠. ‘잘 해왔구나!’ 그리고 엄마, 아빠가 내 선택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믿어줬던 것도 감사하고요. 이 모든 게 다 모여서 지금의 내가 된 것 같아요.
앞으로의 제 삶도 크게 고민하지 않아요.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해 가겠거니, 찾아가겠거니 생각해요. 이런 의미에서 저는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을 추천하고 싶어요. 자립심을 키운다는 것은 인생에서 참 중요하다고 느껴요. 이 인터뷰를 보는 분들의 자녀도 스스로 자립심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제가 제 친구들한테도 늘 바라는 마음이고, 앞으로 입시를 할 친구들한테도 바라는 마음이에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 후원하고, 이 운동에 참여해서 이런 유익을 누렸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끝내고 나니 채송아 선생님이 살짝 부러웠다. 스스로 하고 싶은 걸 찾고, 그 목표를 위해 애쓰고, 하나씩 이루어가는 삶이라니. 우리 아이들도 이렇게 자란다면 얼마나 좋을까! 먹기 싫은 걸 먹으라며 억지로 밀어넣지 않고, 누군가 다 차려준 밥상에 앉아 떠먹여 주는 걸 받아먹는 인생이 아니라 스스로 좋아하는 걸 찾고, 요리를 하고, 자기만의 밥상을 차려 맛나게 먹는 멋진 삶을 아이들에게 주고 싶다.
사전 인터뷰 때 채송아 선생님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활동으로 거대한 사교육 시장에 떠밀려가지 않고 마음을 지킬 수 있었노라고. 우리가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회원으로 계속 살아가는 이유일 것이다.
■ 글. 노워리기자단 원지호
사교육을 하지 않으면 공부를 못 할 것이다, 혹은 안 할 것이라는 지레짐작이 있다. 사교육걱정 회원들이 자녀에게 절대로 사교육을 시키지 않겠다는 결의 같은 것을 했을 리는 없다. 그러나, 사교육을 선택하려고 할 때 정말 필요한 사교육인지 고민하고, 매우 신중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세간의 선입견처럼 사교육 수강과 성적이 정비례하면 회원 자녀들은 대체로 공부를 못해야 할 텐데, 과연 그럴까? 단체의 역사도 만16년이 흘렀고, 초창기 회원 자녀들은 이미 성인이 되었다. 이들은 어떻게 자라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노워리기자단 활동을 하며 가까워진 상근직원 채송아 선생님의 딸이 올 초에 취업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2009년부터 회원으로 활동했고, 2024년 현재 상근활동가로 일하는 채송아 선생님의 딸은 교육운동을 하는 엄마의 철학과 자신의 성장과정을 어떻게 평가할까? 그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어 8월 10일, 아침 일찍 서울행 기차를 탔다.
원지호(이하 지호) :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려요.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정그린(이하 그린) : 안녕하세요? 99년생 정그린이고요. 엄마 덕분에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사교육 걱정 없이 살아왔습니다.
지호 :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서 입사했는지, 그리고 일의 만족도는 어떤지 말씀해주시겠어요?
그린 : 저는 현재 삼성전자 제품사업부에서 UX(User Experience)디자인을 하고 있어요. 대학에서는 시각디자인을 전공했고요. UX디자인은 사용자들이 어떤 서비스를 사용할 때, 그 경험이 조금 더 편리해질 수 있도록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하는 일이에요. 대학교 때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디자인 인력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에 뽑혀서 2년간 활동했어요. 자연스럽게 이 회사 취업 준비를 했고 다행히 입사했습니다.
지호 : 취업 준비하면서 많이 힘들었을 텐데, 삶의 모토로 삼는 좌우명이 있나요?
그린 :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어떻게든 해야지. 하고 싶은 일을 하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자.’ 이런 마인드로 살아요.
지호 : 직장에서 일을 맡으면,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는 편인가요?
그린 : 제가 많은 걸 하고 싶어 해서 일을 맡기면 그 이상을 하려고 해요. 주어진 일만 하기 보단 제가 하고 싶은 걸 찾아서 하기도 하고요. 일을 재밌어하고, 이 과정에 몰입하는 것도 즐거워요.
진로를 정하니까 공부가 훨씬 재밌어져
지호 : 그린님의 학창 시절은 어땠어요? 초중고등학교 시절,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즐거웠어요?
그린 :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할머니랑 목포에서 살다가 상경을 했어요. 목포에서는 할머니가 공부 욕심이 많으셔서 노는 토요일에도 보충수업을 하는 학원에 보내셨어요. 2학년 말에 서울에 와서는 학원을 안 다니게 되니까 놀 시간이 많아졌죠. 친구들이랑 놀면서 자유롭게 보냈고, 엄마 아빠랑 여행도 많이 다녔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 그리고, 만들기 하는 미술 분야에 관심이 많았어요.
중학교 때는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야 해서 힘들었어요. 특히, 수학 점수를 잘 받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어요. 그때는 미술 전공할 생각이 없었고, 좋은 대학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스트레스 때문인지 오히려 공부를 열심히 안 했지만요.
고등학교 때는 여고를 다녀서 친구들이랑 같이 떠들고, 공부도 나름 열심히 했어요. 고1 때 미대에 가야겠다고 진로를 정했어요. 목표가 생기니까 미술학원 다니면서 그림 그리는 것도 너무 재밌었고, 대학에 가기 위한 공부도 훨씬 더 재밌어졌어요.
지호 : 고등학교 때 지금의 진로를 정했다고 했는데, 그 전에는 어떤 일을 하고 싶었어요? 어떤 계기로 미술을 전공하기로 결정했나요?
그린 :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현실적인 고려를 하지 않고 아빠가 한의사였으니까 ‘한의사 멋지다. 한의사 되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어요.(채송아 선생님의 기억에 따르면 그린 님은 초등학교 4학년 때 ‘한의사가 되어서 한의원을 꾸미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중학교 때는 동물을 좋아해서 수의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오래 가지고 있었어요. 사람들의 이야기 듣는 것도 좋아해서 심리학 쪽도 관심 있었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미술 선생님이 미대에 가면 어떻겠냐고 추천해주셨어요. 처음 선생님이 권유하셨을 때, ‘근데, 저는 수의사가 꿈이에요.’라고 했지만요. 그런데 엄마도 제가 미술을 하면 잘할 것 같다고 응원해주셨어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워낙 좋아했고, 미적인 것에 관심이 많다 보니 미술쪽으로 마음이 기울었고요. 미술로 방향을 정하고 나니까, 디자인이 적성에 잘 맞겠다고 생각했어요.
지호 : 고등학교 1학년 말에 미술 전공을 선택했으면 이전에는 미술 관련 활동을 안 했나요? 미술 전공하는 분들은 보통 일찍 준비하잖아요. 고등학교 2학년이면 미술을 시작하기에 늦은 것 같은데 준비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그린 : 그 전에는 전문적인 미술교육은 거의 안 받았죠. 평소에 낙서하고, 친구들 관찰하는 걸 좋아해서 시간날 때마다 그림을 그려서 선물로 주면 친구들이 좋아했어요. 미술을 시작했을 때 늦었다고 크게 걱정하진 않았어요. 부모님께서도 적극 지원하셨고, 그림 잘 그린다는 말을 옛날부터 들어 왔으니 잘할 수 있겠지 생각했거든요.
막상 미술학원에 가니까 잘하는 친구들이 정말 많은 거예요. 특히 고3 때는 시험도 보고 엄격한 평가를 받으니까 ‘잘하는 애들만큼 나도 잘할 수 있을까?’ 걱정했죠. 예고 준비한 애들은 중학교 때부터 훈련 받았으니까요. ‘내가 좀 더 열심히 해서 실력을 빨리 쌓아야 겠다’는 압박감이 있었어요. 시험 볼 때는 밥도 잘 못 먹고 늘 배가 아팠죠.
대학 입시 준비하기 전까지는 실력이 빨리 늘어나니까 좋았는데, 아무래도 본격적인 입시 준비 과정이 힘들었어요. 학원에서 제시하는 실기시험을 해결하는데, 사실, 미술에는 정답이 없잖아요. 학원 선생님들은 ‘이게 맞다, 틀리다. 합격이다, 불합격이다.’라고 말씀하시는데, 100% 맞는 건 아니니까요. ‘내가 이렇게 그리면 대학에 떨어지나?’하는 걱정에 늘 사로잡혀 있었어요. 게다가 입시미술 학원비가 많이 드니까 재수하면 안 된다라는 생각이 있었고요.
공부만 하다보면 하고 싶은 것을 할 시간이 없어
지호 : 입시 준비할 때 많이 힘드셨겠어요?
그린 : 작품에 대해 매번 평가를 받는 게 힘들긴 했는데, 돌아보면 또 아주 그렇게 많이 힘든 것도 아니었어요. 디자인은 내가 하고 싶어서 정한 진로였고, 목표가 뚜렷하니까 다른 공부할 때는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어요. 정확히 말하면 ‘하고 싶은 일을 더 잘하기 위한 길이다’라고 생각해서 입시 공부가 때로 재밌기도 했어요.
지호 : 당시 가장 큰 고민거리는 무엇이었어요?
그린 : 입시에서는 성적을 내야 하니까 등급에 대한 압박과 고민이 컸죠. 매일매일 공부해도 당일에 시험을 못 치면 등급이 낮게 나오니까요.
지호 : 입시 제도가 상대평가로 등급을 나누고 평가하잖아요. 평가 받는 입장에서 어떤 기분이 들었어요?
그린 : 사실 많은 친구들이 상대평가로 등급을 나누고 서열을 가리는 걸 힘들어 해요. 또 내가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시험치는 날 삐끗하면 등급히 확 낮아지니까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죠. 스스로를 탓하게 되니까 건강한 방식이 아닌 거 같아요. 등급을 올리기 위한 공부만 해야 해서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다른 무언가를 할 시간도 없어요. 저는 그림을 좋아해서 전공을 그나마 빨리 선택했지만 목표가 없는 아이들은 그저 좋은 등급이 나올 때까지 매진해야 하니까 안타깝죠.
지호 : 저도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이다보니 제 생각이 자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하거든요. 그린 님과 부모님 관계는 어떠한지 궁금해요. 그린 님에게 아빠, 엄마는 어떤 분이셨어요?
그린 : 무엇보다 굉장히 친밀하고, 정말 행복한 가정이라고 늘 생각해요. 저희 아빠는 퇴근 후에도 혼자 공부를 계속 하시면서 매우 생산적이고 건강하게 사셨어요. 저도 저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했죠. 제가 하고 싶은 걸 찾고, 그걸 스스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기준은 아빠를 보면서 생긴 것 같아요. 당시에는 ‘퇴근하고나서도 왜 저렇게까지 공부를 하시지?’ 의아했어요. 제가 지금 직장을 다녀보니 정말 대단한 실행력이란 걸 알겠어요. 저도 아빠를 따라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면이 있어요.
또, 엄마아빠는 제가 하는 일에 크게 간섭하지 않으셨어요. 성적이 나빠도 채근하지 않고 잘 이해해 주셨어요. 성적을 보시고 너무 속상해하지도, 너무 기뻐하지도 않으셨어요. 성적표를 보여 드리는 게 부담이 없었죠. 제 스스로 성적이 불만족스러운 거지, 부모님이 세세하게 관여하지 않으셨거든요. 제가 뭘 하든 잘 할 거라고 생각하셔서 저도 자연스럽게 잘 할 거라고 생각한 거 같아요.
지호 : 그린 님을 믿어 주신 거네요?
그린 : 네, 그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제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셨어요. 제가 힘들다고 하거나 뭐가 재밌다고 하면 유심히 들어주셨어요. 제가 평소에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니까 미대로 진로 고민할 때 엄마가 먼저 지지해주신 거겠죠? 기본적으로 저를 믿어주셔서 제가 잘 성장한 게 아닐까 생각해요.
지호 : 채송아 선생님께 그린 님이 어떤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면서 키우셨냐고 여쭤 보니까,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자기를 성찰하고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바라셨다고 해요. 이런 어머니의 바람이 지금 그린 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그린 : 사실 엄마가 그런 양육관을 갖고 있는지는 몰랐어요.(웃음) 자세히 알지는 못했지만 자기 스스로 공부하도록 생활의 주도권을 저에게 주셨어요. 고등학교 때부터는 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인강이든 현장 강의든 선택할 수 있게 하셨고요. 미술을 선택했을 때 지지해 주는 모든 과정이 제가 뭘 하고 싶은지 스스로 고민하고 찾아가는 데 당연히 반영이 됐다고 생각해요. 제가 심리검사를 해보면 자아 성찰 점수가 되게 높거든요. 엄마가 그런 생각으로 저를 양육했다면 그런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스스로 계획하고 선택하는 기쁨이 있어
지호 : 어머니께서 오랜 시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회원으로 활동하셨잖아요. 그 활동이 그린 님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나요?
그린 :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말하는 게 ‘사교육을 무조건 하지 마!’는 아니잖아요. ‘너에게 정말 꼭 필요하고, 원하는 사교육을 해.’인 것 같아요. 중3때 수학학원에 처음 다니기 시작했는데, 몇 개월 다니다가 나에게 더 이상 도움이 안되겠다 싶으면 과감히 그만뒀어요. 커리큘럼을 다 짜 주는 학원에 가지 않으니까 제가 무얼 하고 싶고, 어떻게 공부할지 스스로 계획을 짜고 자기 주도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유익이었어요.
대학에서 수강시간표를 짜는 것이나, 진로를 정하는 것, 직장에서 일하는 것 모두 다 스스로 해야 하는데, 초중고 때 그런 자세를 키워 놓지 않아서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친구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저는 어렸을 적부터 계획을 스스로 짜고, 무언가 필요하면 제가 선택했거든요. 제가 엄마한테 ‘인강 이거 듣고 싶어’, 고3 때는 ‘(대치동)현장강의 가고 싶어.’ 하면 엄마가 ‘난 사교육걱정없는세상회원인데 대치동 강의는 안돼! 무슨 소리하는 거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입시를 준비하는 고3 입장에서는 현장강의와 인강에 만족도가 굉장히 높았어요. 더 어려운 문제를 풀고 싶어서 간 거니까 재미있었거든요. 인강도 제가 하고 싶은 것만 골라 들을 수 있어서 효율적이었고요. 이런 것들이 좋은 시너지를 낸 것 같아요.
지호 : 인터뷰를 보는 다른 부모님들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활동을 추천 하실 의향이 있으신가요?
그린 : 그럼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사교육을 무조건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자녀가 필요하다 느낄 때 해도 충분하다는 거잖아요. 그래야 스스로 공부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사교육 없이도 무언가 할 수 있고 거기에도 나름의 길이 있으니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활동을 추천해요. 저는 사교육 걱정 없이, 스스로 제 삶을 주도할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그래서 추천드려요. 진심으로!
지호 :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말씀해 주시겠어요?
그린 : 저는 저의 학창 시절이 굉장히 만족스러워요. 내가 원하는 대학에 가고, 취업에 성공하는 성과를 내서 만족하기도 하지만, 학창 시절부터 스스로 계획하고, 실천했던 게 지금 무언가를 이룰 수 있는 기반이 된 것 같아요. 제가 이런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어서 굉장히 감사해요. 제 자신도 기특하죠. ‘잘 해왔구나!’ 그리고 엄마, 아빠가 내 선택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믿어줬던 것도 감사하고요. 이 모든 게 다 모여서 지금의 내가 된 것 같아요.
앞으로의 제 삶도 크게 고민하지 않아요.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해 가겠거니, 찾아가겠거니 생각해요. 이런 의미에서 저는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을 추천하고 싶어요. 자립심을 키운다는 것은 인생에서 참 중요하다고 느껴요. 이 인터뷰를 보는 분들의 자녀도 스스로 자립심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제가 제 친구들한테도 늘 바라는 마음이고, 앞으로 입시를 할 친구들한테도 바라는 마음이에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 후원하고, 이 운동에 참여해서 이런 유익을 누렸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끝내고 나니 채송아 선생님이 살짝 부러웠다. 스스로 하고 싶은 걸 찾고, 그 목표를 위해 애쓰고, 하나씩 이루어가는 삶이라니. 우리 아이들도 이렇게 자란다면 얼마나 좋을까! 먹기 싫은 걸 먹으라며 억지로 밀어넣지 않고, 누군가 다 차려준 밥상에 앉아 떠먹여 주는 걸 받아먹는 인생이 아니라 스스로 좋아하는 걸 찾고, 요리를 하고, 자기만의 밥상을 차려 맛나게 먹는 멋진 삶을 아이들에게 주고 싶다.
사전 인터뷰 때 채송아 선생님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활동으로 거대한 사교육 시장에 떠밀려가지 않고 마음을 지킬 수 있었노라고. 우리가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회원으로 계속 살아가는 이유일 것이다.
■ 글. 노워리기자단 원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