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병일: Alt+R요!
윤 : 오, 됐어요. 감사합니다!
조병일 선생님과의 인터뷰는 지난 10월, 줌 미팅에서 녹화 단축키를 알려주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선생님은 조치원에서 수학교사로 재직 중이다. 나와 ‘중등 교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회원’, ‘초등 자녀 학부모’라는 세 겹의 공통점이 있어 금세 동질감이 형성됐다. 교사이자 부모로서 어떤 철학과 과제를 갖고 계신지 듣고 싶어 시작된 인터뷰는 두 시간도 짧게 느껴졌다.
윤송미(이하 윤) : 공교육 교사로서 사교육 과열을 문제적으로 보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조병일(이하 조) : 대전에서도 ‘학군지’로 불리는 둔산동의 중학교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어요. 국제고·영재고 진학률이 높고, 비싼 전,월세를 감수해 학교 배정을 받는 곳이죠. 사교육비 규모가 어마어마합니다. 그런데 결과가 다 좋냐? 전혀 아니었어요. 겉으로는 ‘선행 많이 했다’, ‘문제 잘 푼다’ 말하지만, 실제 교실에서 보면 개념은 비어 있고, 문제를 풀어도 사고 과정이 따라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교과서 유형 그대로 출제해도 만점이 거의 안 나옵니다. “이만큼 시간과 돈을 들였는데, 결과가 이 정도라고?” 사교육의 효과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거죠.
윤 : ‘집 평수만큼 성적이 나온다’는 속설이 있잖아요. 사교육은 투자한 만큼 성과를 얻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선생님은 오히려 반대 사례를 많이 보셨다는 건가요?
조 : 성적은 사실 유전이나 환경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있지만, 정말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오히려 사교육을 별로 안 했습니다. 물론 사교육 성공 사례도 있죠. 그런데 그 아이들은 공통적으로 학교 수업 태도가 좋아요. 설명을 끝까지 듣고, 과제를 성실히 하고요.
“전교 1등이 다니는 학원”에 몰리는 경향이 있는데, 제가 보기에는 ‘1등 할 아이가 그 학원에 다닌 것’이지, ‘학원 때문에 1등이 된 것’이 아닙니다. 졸업생들에게도 물어봤어요.
“학원 다닌 게 도움이 되었니?”
대답은 거의 같아요.
“아니요. 결국 학교 수업이 제일 중요했어요.”
이건 제 개인 의견이 아니라, 수없이 교실에서 확인된 경험적 데이터입니다.

윤 : ‘최상위권을 만드는 힘은 선행이 아니라 학습 태도’라는 말씀이시군요. 현장에서 느끼신 결과가 그렇다니 놀랍습니다.
조 : 그렇습니다. 학부모님들도 <아깝다 학원비> 같은 책을 한번 읽어보시면 좋아요. 선행 없이도 충분히 스스로 공부할 수 있다는 걸 아실 수 있습니다.
윤 : 사실 대부분의 부모가 ‘수업 충실·기본기’의 중요성을 알고 있음에도, 실제 선택은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조 : 저는 사교육시장의 불안 마케팅이라고 봐요. 대표적인 게 학원 레벨 테스트죠. 일부러 어려운 문제를 주고 낮은 점수를 맞게 한 뒤, “이 정도면 심각합니다. 우리 학원 아이들은 다 풉니다.” 라고 말하면 부모는 불안해지죠. 또 ‘저항 심리’도 있어요. 이미 많은 돈을 썼는데, “학원보다 태도가 중요하다”는 말을 들으면 자기 선택을 부정당한 기분이 들잖아요. 거의 모든 학생이 학원을 다녔지만, 제 기준에 학원에 다녀도 될 학생은 10%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학습 태도가 먼저 형성된 뒤에 학원이 의미가 있어요. 제가 수학을 가르쳐 보면, 선행한 아이들은 답은 알아요. 하지만 그 답에 이르는 사고 과정은 따라오질 못해요. 개념은 비어 있고, 풀이 과정만 기계적으로 푸는 거죠. 초등 때까지는 이 방식이 좀 통할 수 있어요. 하지만 중등부터는 반드시 한계가 옵니다. 결론을 알고 학교 수업에 들어오니 재미없고, 건성으로 듣고, 집중이 무너져요. 그래서 저는 선행이 비효율적인 정도가 아니라, 집중력, 사고력 신장 자체를 방해한다고 말합니다.

윤 : 그런데 한편으로 주변 아이들이 다 학원에 가니까, 혼자만 안 가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어요. 학부모로서 불안감을 이겨내는 게 쉽지 않고, 공교육에 대한 불신도 많고요.
조 : 맞습니다. 저도 초등 입학 전 아이 유치원을 선택할 때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고민 끝에 놀이 중심인, 한글을 가르치지 않는 유치원으로 보냈는데요. 그러다보니 초등 입학 후 몇 달간은 ‘화장실’도 못 읽었죠. 나중에 아이가 그때 좀 주눅이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원래 교육과정은 초1에서 ‘ㄱ’부터 시작하는 것이잖아요? 문제는 아이들 대부분이 선행을 하고 온다는 거죠. 그래서 적기 교육을 선택한 아이들이 오히려 불리해지고요. 그래서 저는 담임·교장 선생님께 솔직히 말씀드렸어요. “교육과정을 믿고, 학교와 선생님을 믿고 이렇게 보냅니다.” 교장 선생님도 그게 맞다 하셨고, 담임 선생님도 적극 도와주셨어요. 몇 달 지나서 아이는 충분히 따라갔고요, 무엇보다 학교가 재미있다고 말해요. ‘처음 배우는 재미’를 느낀 거죠. 이게 정말 중요하거든요.
윤 : 부모가 ‘학부모’가 되는 때가 있다고 하잖아요. 머리로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부모가 되고 아이들이 커 가면서 내 자식은 좀 특별하다는 기대, 또 더 잘했으면 하는 욕심이 생기는 것 같아요. 선행보다 적기를 지켜낼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합니다. 혹시 자녀가 원래 척척 알아서 잘 하는 모범생인 건 아닌지? (웃음)
조 : 먼저 보내주신 질문지에 이 질문을 보고, 저도 고민했어요. 5학년인 제 아들에게 물어 봤어요.
“너는 수업 만족도가 어때?”
“재밌어. 100점 만점에 80점!”
“20점은 왜 깎았어?”
“선생님이 좀 무서워….”
아이들은 학교를 재미있게 다니고 있어요. 학교에서 배우는 과정 자체를 즐기고 있다고 봅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아이가 학교에서 더 집중할 수 있을까?”를 고민합니다.
‘집에 TV·PC·스마트폰이 없으면 상위 50%에 들어 간다’는 연구를 본 적이 있어요. 저희 집도 TV와 PC를 없앴어요. 집에 오면 그냥 놀다가, 심심하면 책 읽고 그러는 거죠. 지금도 저기서 책 보면서 놀고 있네요. 배움이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가정에서 부모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부는 학교에서 하는 거고요.
물론 저도 아이가 공부 잘하면 좋죠.(웃음) 하지만 모든 아이가 서울대를 갈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어요. 학습 의지와 태도가 잘 형성되면, 아이가 더 배우고 싶다고 할 때는 빚을 내서라도 도와주지 않을까요? 초등 교사인 아이 엄마가 집에서 가볍게 복습을 봐주긴 하지만, 진도 체크 정도예요. 예체능은 사교육을 합니다. 제 기준은 “학교가 책임지는 부분인가, 아닌가?”입니다. 피아노나, 태권도는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잖아요. 그런 영역은 사교육 합니다.

윤 : 충분히 공감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중등 과학이라 선행이 횡행하진 않아요. 그래도 수업 목표를 향한 빌드업을 한창 하고 있을 때, 결론만 알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이미 알고 있다'는 걸 드러내며 방해하는 학생이 종종 있습니다. 학원이 기본이 되다 보니 그런 행동이 학교에서 배움을 방해한다고 생각하기 어려운 지점까지 온 것 같아요. 모두가 집중해서 처음 배우는 기쁨과 놀라움이 있는 교실을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데 선생님 덕분에 상기합니다. 학원을 보내는 배경에는 공교육 불신도 큰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리 나라 공교육만 믿어도 될까요?
조 : 한국 공립 교육 수준은 꽤 높습니다. 교사 역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이제는 외국에서 한국 교사를 모셔가려고 하고 있죠. 학교에서 예산을 대략 계산해 보니까 한 아이에게 3~400만 원의 교육 예산이 들어가더라고요. 이미 국가가 인재를 뽑고, 우리 세금으로 이런 교육 시스템을 잘 만들어 놓았잖아요. 공적 자원을 제대로 활용해야지, 개인이 사교육비를 그만큼 들일 일이 아니라는 거죠.
윤 : 듣다 보니 한 가지 궁금해지는데요. 선생님은 교과 사교육, 특히 수학 선행학습에 강하게 반대하시잖아요. 저 역시 ‘초등학생이 중학 수학을 끝냈다’, ‘중학생이 고등수학을 몇 바퀴 돌았다’ 같은 말에 크게 흔들리진 않습니다. 국가 교육과정보다 몇 년 앞서는 선행은, 그 내용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소수의 아이에게만 의미가 있고 대부분 독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만 저도 한 학기나 1년 정도의 가벼운 선행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보는 편이에요. 선생님은 이런 정도의 선행도 반대하시나요?
조 : 네, 선행은 ‘제로’가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한다면 학기가 아니라 한두 달 정도? 그것도 학원에 가서 하는 선행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필요를 느껴 인강을 찾아보며 공부하는 정도를 말합니다. 많은 분들이 “선행이 효과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제가 보기엔 100명이 선행했을 때 진짜 성공하는 비율은 10%도 안 됩니다. 반대로 학원 없이 본인이 스스로 공부했을 때 성공 확률은 그보다 훨씬 높아요. 다만 후자의 경우 모수가 너무 적다 보니, 실제 성공 사례는 학원이 더 많은 것처럼 보이는 겁니다. 예를 들어 학원 없이 선행하지 않은 경우가 10명이라면 그중 절반이 성공해도 5명이지만, 학원에서 선행한 경우는 100명 중 10%만 성공해도 10명이니까 숫자상으로는 두 배로 보이죠.

윤 : 선행은 안할수록 좋다는 입장이시네요. 좀 더 보수적으로 여쭤볼게요. 중3 겨울방학에는 고1 수학을 한 번 보고 입학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중·고등 과정은 양도 깊이도 완전히 달라서 학교 수업만 믿으면 큰 코 다친다고요. 중3 후반기부터 고1 전에도 선행을 안 하는 것이 더 낫다고 보시나요?
조 : 네, 저는 이렇게 묻고 싶어요. 그 많은 아이들이 학원을 다녔는데, 그중 실패한 사례들은 어떻게 설명할까요? 반대로 선행 없이도 충분히 성공한 아이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저는 그런 경우를 정말 많이 봤습니다.
중요한 건 사교육을 ‘걱정 없이’ 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제 아들이 중3이 되었을 때 “아빠, 고등학교가 걱정돼서 조금 알고 싶어”라고 하면 보낼 수 있어요. 그런데 “중3이면 이걸 꼭 해야 한대.”라는 분위기에 떠밀려, 아이가 싫어하는데도 불안 때문에 억지로 시키는 건 아니라는 거죠. 물론 고등 수학의 양이 중학교보다 훨씬 많은 건 사실입니다. 학생이 정말 원하고 학습 의지가 있다면, 중3 때 한두 달 정도 인강을 통해 맛보는 건 괜찮아요. 고등학생이 되면 주말에도 스스로 필요한 걸 찾아 해야 할 정도로 바쁘니 학원을 못 가는 경우도 많더라고요.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가면 학습량이 늘어나는 건 분명합니다. 보통 중학교에서는 한 학년에 7~8단원을 배우지만, 고1 수학의 정석은 40단원입니다. 양만 보면 5배 정도 늘어나는 셈이죠. 그렇다고 그만큼 밤새 학원을 다니거나 공부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중학교 때처럼 ‘놀면서 한다’는 방식이면 따라가기 어렵지만, 그날 배운 내용을 복습하는 정도만 해도 충분해요. 그걸 못 하면 힘들어지죠. 결국 늘어난 양을 꾸준히 따라가려는 의지, 그 힘을 키워주는 게 중요합니다. 공부할 양이 많아지는 건 맞지만, 그래서 미리 선행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학교는 옛날과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과거의 기억만으로 현재 학교를 불신하는 시선을 만날 때가 있다. 동시에 많은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학교 안에서 자괴하는 날도 많았다. 여기에 학폭, 안전, 고교학점제, 다문화, 사교육, AI까지... 쏟아지는 책임은 점점 많아지는데, 덜어지는 것은 없다. 그 답답한 학교 안에서도 ‘선생님’이라는 세 글자가 빛나는 ‘교육’을 묵묵히 실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조병일 선생님의 성장 스토리도 그러했다.
일면식 없는 내가 호기심으로 불쑥 연락 드렸을 때, 조 선생님은 창체 수업에 들어가는 중이었다. “지금 전화하는 거 안보여? 조용히 해!”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에서 아이들과 라포가 얼마나 단단한지, 교사의 보람과 권위가 전화기 너머까지 오롯이 전해졌다면 믿을까. 생활 지도가 되어야 수업이 가능하고, 수업이 되어야 생활 지도가 가능하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조 선생님의 비결이 궁금해 두 번째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2편에서 계속)
■ 글. 노워리기자단 윤송미
엄마로서 아이에게, 교사로서 학생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은 현실적 이상주의자. 아이가 커 갈수록, 교직 경력이 늘어날수록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을 본다. 읽고 쓰고 나누면서 빛나는 길을 같이 내고 싶다. 책 <과학샘의 그라운딩, 자연에서 춤추다>을 펴냈다.
조병일: Alt+R요!
윤 : 오, 됐어요. 감사합니다!
조병일 선생님과의 인터뷰는 지난 10월, 줌 미팅에서 녹화 단축키를 알려주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선생님은 조치원에서 수학교사로 재직 중이다. 나와 ‘중등 교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회원’, ‘초등 자녀 학부모’라는 세 겹의 공통점이 있어 금세 동질감이 형성됐다. 교사이자 부모로서 어떤 철학과 과제를 갖고 계신지 듣고 싶어 시작된 인터뷰는 두 시간도 짧게 느껴졌다.
윤송미(이하 윤) : 공교육 교사로서 사교육 과열을 문제적으로 보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조병일(이하 조) : 대전에서도 ‘학군지’로 불리는 둔산동의 중학교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어요. 국제고·영재고 진학률이 높고, 비싼 전,월세를 감수해 학교 배정을 받는 곳이죠. 사교육비 규모가 어마어마합니다. 그런데 결과가 다 좋냐? 전혀 아니었어요. 겉으로는 ‘선행 많이 했다’, ‘문제 잘 푼다’ 말하지만, 실제 교실에서 보면 개념은 비어 있고, 문제를 풀어도 사고 과정이 따라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교과서 유형 그대로 출제해도 만점이 거의 안 나옵니다. “이만큼 시간과 돈을 들였는데, 결과가 이 정도라고?” 사교육의 효과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거죠.
윤 : ‘집 평수만큼 성적이 나온다’는 속설이 있잖아요. 사교육은 투자한 만큼 성과를 얻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선생님은 오히려 반대 사례를 많이 보셨다는 건가요?
조 : 성적은 사실 유전이나 환경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있지만, 정말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오히려 사교육을 별로 안 했습니다. 물론 사교육 성공 사례도 있죠. 그런데 그 아이들은 공통적으로 학교 수업 태도가 좋아요. 설명을 끝까지 듣고, 과제를 성실히 하고요.
“전교 1등이 다니는 학원”에 몰리는 경향이 있는데, 제가 보기에는 ‘1등 할 아이가 그 학원에 다닌 것’이지, ‘학원 때문에 1등이 된 것’이 아닙니다. 졸업생들에게도 물어봤어요.
“학원 다닌 게 도움이 되었니?”
대답은 거의 같아요.
“아니요. 결국 학교 수업이 제일 중요했어요.”
이건 제 개인 의견이 아니라, 수없이 교실에서 확인된 경험적 데이터입니다.
윤 : ‘최상위권을 만드는 힘은 선행이 아니라 학습 태도’라는 말씀이시군요. 현장에서 느끼신 결과가 그렇다니 놀랍습니다.
윤 : 그런데 한편으로 주변 아이들이 다 학원에 가니까, 혼자만 안 가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어요. 학부모로서 불안감을 이겨내는 게 쉽지 않고, 공교육에 대한 불신도 많고요.
조 : 맞습니다. 저도 초등 입학 전 아이 유치원을 선택할 때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고민 끝에 놀이 중심인, 한글을 가르치지 않는 유치원으로 보냈는데요. 그러다보니 초등 입학 후 몇 달간은 ‘화장실’도 못 읽었죠. 나중에 아이가 그때 좀 주눅이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원래 교육과정은 초1에서 ‘ㄱ’부터 시작하는 것이잖아요? 문제는 아이들 대부분이 선행을 하고 온다는 거죠. 그래서 적기 교육을 선택한 아이들이 오히려 불리해지고요. 그래서 저는 담임·교장 선생님께 솔직히 말씀드렸어요. “교육과정을 믿고, 학교와 선생님을 믿고 이렇게 보냅니다.” 교장 선생님도 그게 맞다 하셨고, 담임 선생님도 적극 도와주셨어요. 몇 달 지나서 아이는 충분히 따라갔고요, 무엇보다 학교가 재미있다고 말해요. ‘처음 배우는 재미’를 느낀 거죠. 이게 정말 중요하거든요.
윤 : 부모가 ‘학부모’가 되는 때가 있다고 하잖아요. 머리로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부모가 되고 아이들이 커 가면서 내 자식은 좀 특별하다는 기대, 또 더 잘했으면 하는 욕심이 생기는 것 같아요. 선행보다 적기를 지켜낼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합니다. 혹시 자녀가 원래 척척 알아서 잘 하는 모범생인 건 아닌지? (웃음)
조 : 먼저 보내주신 질문지에 이 질문을 보고, 저도 고민했어요. 5학년인 제 아들에게 물어 봤어요.
“너는 수업 만족도가 어때?”
“재밌어. 100점 만점에 80점!”
“20점은 왜 깎았어?”
“선생님이 좀 무서워….”
아이들은 학교를 재미있게 다니고 있어요. 학교에서 배우는 과정 자체를 즐기고 있다고 봅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아이가 학교에서 더 집중할 수 있을까?”를 고민합니다.
‘집에 TV·PC·스마트폰이 없으면 상위 50%에 들어 간다’는 연구를 본 적이 있어요. 저희 집도 TV와 PC를 없앴어요. 집에 오면 그냥 놀다가, 심심하면 책 읽고 그러는 거죠. 지금도 저기서 책 보면서 놀고 있네요. 배움이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가정에서 부모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부는 학교에서 하는 거고요.
물론 저도 아이가 공부 잘하면 좋죠.(웃음) 하지만 모든 아이가 서울대를 갈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어요. 학습 의지와 태도가 잘 형성되면, 아이가 더 배우고 싶다고 할 때는 빚을 내서라도 도와주지 않을까요? 초등 교사인 아이 엄마가 집에서 가볍게 복습을 봐주긴 하지만, 진도 체크 정도예요. 예체능은 사교육을 합니다. 제 기준은 “학교가 책임지는 부분인가, 아닌가?”입니다. 피아노나, 태권도는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잖아요. 그런 영역은 사교육 합니다.
윤 : 충분히 공감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중등 과학이라 선행이 횡행하진 않아요. 그래도 수업 목표를 향한 빌드업을 한창 하고 있을 때, 결론만 알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이미 알고 있다'는 걸 드러내며 방해하는 학생이 종종 있습니다. 학원이 기본이 되다 보니 그런 행동이 학교에서 배움을 방해한다고 생각하기 어려운 지점까지 온 것 같아요. 모두가 집중해서 처음 배우는 기쁨과 놀라움이 있는 교실을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데 선생님 덕분에 상기합니다. 학원을 보내는 배경에는 공교육 불신도 큰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리 나라 공교육만 믿어도 될까요?
조 : 한국 공립 교육 수준은 꽤 높습니다. 교사 역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이제는 외국에서 한국 교사를 모셔가려고 하고 있죠. 학교에서 예산을 대략 계산해 보니까 한 아이에게 3~400만 원의 교육 예산이 들어가더라고요. 이미 국가가 인재를 뽑고, 우리 세금으로 이런 교육 시스템을 잘 만들어 놓았잖아요. 공적 자원을 제대로 활용해야지, 개인이 사교육비를 그만큼 들일 일이 아니라는 거죠.
윤 : 듣다 보니 한 가지 궁금해지는데요. 선생님은 교과 사교육, 특히 수학 선행학습에 강하게 반대하시잖아요. 저 역시 ‘초등학생이 중학 수학을 끝냈다’, ‘중학생이 고등수학을 몇 바퀴 돌았다’ 같은 말에 크게 흔들리진 않습니다. 국가 교육과정보다 몇 년 앞서는 선행은, 그 내용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소수의 아이에게만 의미가 있고 대부분 독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만 저도 한 학기나 1년 정도의 가벼운 선행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보는 편이에요. 선생님은 이런 정도의 선행도 반대하시나요?
조 : 네, 선행은 ‘제로’가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한다면 학기가 아니라 한두 달 정도? 그것도 학원에 가서 하는 선행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필요를 느껴 인강을 찾아보며 공부하는 정도를 말합니다. 많은 분들이 “선행이 효과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제가 보기엔 100명이 선행했을 때 진짜 성공하는 비율은 10%도 안 됩니다. 반대로 학원 없이 본인이 스스로 공부했을 때 성공 확률은 그보다 훨씬 높아요. 다만 후자의 경우 모수가 너무 적다 보니, 실제 성공 사례는 학원이 더 많은 것처럼 보이는 겁니다. 예를 들어 학원 없이 선행하지 않은 경우가 10명이라면 그중 절반이 성공해도 5명이지만, 학원에서 선행한 경우는 100명 중 10%만 성공해도 10명이니까 숫자상으로는 두 배로 보이죠.
윤 : 선행은 안할수록 좋다는 입장이시네요. 좀 더 보수적으로 여쭤볼게요. 중3 겨울방학에는 고1 수학을 한 번 보고 입학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중·고등 과정은 양도 깊이도 완전히 달라서 학교 수업만 믿으면 큰 코 다친다고요. 중3 후반기부터 고1 전에도 선행을 안 하는 것이 더 낫다고 보시나요?
조 : 네, 저는 이렇게 묻고 싶어요. 그 많은 아이들이 학원을 다녔는데, 그중 실패한 사례들은 어떻게 설명할까요? 반대로 선행 없이도 충분히 성공한 아이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저는 그런 경우를 정말 많이 봤습니다.
중요한 건 사교육을 ‘걱정 없이’ 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제 아들이 중3이 되었을 때 “아빠, 고등학교가 걱정돼서 조금 알고 싶어”라고 하면 보낼 수 있어요. 그런데 “중3이면 이걸 꼭 해야 한대.”라는 분위기에 떠밀려, 아이가 싫어하는데도 불안 때문에 억지로 시키는 건 아니라는 거죠. 물론 고등 수학의 양이 중학교보다 훨씬 많은 건 사실입니다. 학생이 정말 원하고 학습 의지가 있다면, 중3 때 한두 달 정도 인강을 통해 맛보는 건 괜찮아요. 고등학생이 되면 주말에도 스스로 필요한 걸 찾아 해야 할 정도로 바쁘니 학원을 못 가는 경우도 많더라고요.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가면 학습량이 늘어나는 건 분명합니다. 보통 중학교에서는 한 학년에 7~8단원을 배우지만, 고1 수학의 정석은 40단원입니다. 양만 보면 5배 정도 늘어나는 셈이죠. 그렇다고 그만큼 밤새 학원을 다니거나 공부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중학교 때처럼 ‘놀면서 한다’는 방식이면 따라가기 어렵지만, 그날 배운 내용을 복습하는 정도만 해도 충분해요. 그걸 못 하면 힘들어지죠. 결국 늘어난 양을 꾸준히 따라가려는 의지, 그 힘을 키워주는 게 중요합니다. 공부할 양이 많아지는 건 맞지만, 그래서 미리 선행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 글. 노워리기자단 윤송미
엄마로서 아이에게, 교사로서 학생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은 현실적 이상주의자. 아이가 커 갈수록, 교직 경력이 늘어날수록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을 본다. 읽고 쓰고 나누면서 빛나는 길을 같이 내고 싶다. 책 <과학샘의 그라운딩, 자연에서 춤추다>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