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주일에 교회에 가면 아이들을 유아부에 맡기고 예배를 보러 가는데요.
지금까지는 당번(?)을 정해서 들어가곤 했습니다.
엄마가 아이들과 들어가면 제가 예배를보고 제가 들어가면 엄마가 예배를 보고 엄마가 들어갈때는 엄마는 항상 아이들과 맨 앞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보기 때문에 아이들이 율동을하거나 할때 잘 따라합니다. 하지만 엄마가 화장실을 간다거나 다른아이를 돌보면 둘째는 전혀 개의치 않는데 큰아이가 울먹거리고 칭얼대는편이죠.
반대로 제가 들어갈때에는 전 항상 뒷자리에 앉습니다. 때문에 큰애는 제 옆에 바짝 붙어있고 꼼짝을 하지 않아요 율동도 따라하지 않죠. 둘째는 큰아이가 그러면 덩달아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좀 속상하죠. 한번은 엄마가 아파서 저만 교회를 가게된적이 있는데 둘째가 따라가겠다고 해서 둘째를 유아부에 맡기고 저혼자 예배를 봤는데 둘째는 혼자서도 잘들어가고 잘 어울립니다.
이제부터 고민 시작입니다. 아이들만 유아부에 맡기려고 하면 큰아이 때문에 둘째가 흔들립니다.
그래서 둘째만 유아부에 맡기고 큰아이는 어른들 예배에 같이 들어가려고 하는데, 이렇게 계속 같이 들어가다보면 이런 모습이 굳어져서 큰아이는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때마다 함께하려고 할까봐 걱정입니다. 심지어는 초등학교는 혼자 갈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걱정이네요.
이담에 크면 물론 떨어지겠지요. 그리고 아이들을 일부러 떨어트리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많이 안아주려고도 하는데... 둘째가 큰아이 때문에 할수 있는것도 못할까봐 걱정이고, 큰애 분리불안이 쉽게 사라지지 않아 조급함이 드네요. 휴~ 제 맘이 조급한걸까요? 앞으로는 둘째만 유아부에 맡기고 큰아이와 예배보러 가야할까요? 아니면 지금처럼 당번을 정하고 들어가야 하는 건가요? 큰아이는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서 자기가 좋아하는 미술, 피아노 그리고 발레도 하지 않습니다. 평소에는 무지 좋아하는데 선생님을 집으로 부르라고 할정도에요. 내용이 두서가 없고 장황해졌습니다만.. 그래도 좋은 답변을 기다립니다.
A. 교회 예배 시간 때 느끼는 분리 불안도 그렇고 큰 아이 때문에 둘째도 닮아 가는것 같아 걱정도 되고 그러신거죠? 부모는 하느라 했는데 여전히 아이 태도에서는 변하는 건 없는것 같고 이러다가 가장 크게 걱정되는 학교 생활에 지장이 있을까 더 맘이 쓰이시기도 하구요.
특히 예배를 볼 때 교회에서 일어나는 문제와 간단한 율동을 따라하지 않는 경우 등이 가장 많은 부모의 고민을 불러오는 문제에요. 이전에 같은 문제로 상담을 하시는 분들도 다 같은 이야기를 하시더라구요. 둘째는 안그런데 큰 애는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도 하시고, 아무것도 아닌 걸 왜 따라하지도 않고 의욕도 없어 보이고 내 옆에 붙어만 있는지 화가 나서 집에 오면 부부싸움을 하게 된다고 하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일단 그러한 분리불안은 초등 2학년 이상까지는 잘 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이후엔 아이가 스스로 부모가 함께 있는 것을 싫어하는 연령이 점점 찾아 오게 되니 계속 일어나지 않을 일을 미리 걱정하지는 마세요.
물론 학령기가 되어 아이가 학교 갈 때 뒤를 돌아보거나 눈물 흘리며 부모를 찾는 경우도 있지만 이 또한 시간과 격려 앞에서 극복 못하는 아이는 없습니다.
대부분 둘째 아이들이 분리불안을 덜 느끼는 경우들이 많은데 이는 가족 구성원 수가 이전보다 훨씬 많은 상황을 경험하기도 하고 둘째가 생기며 아이들을 떼어놓는 경우가 부모 입장에서는 줄어 들 수 밖에 없어 함께 있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아서이기도 합니다. 물론 태어난 기질도 있지요.
요는 이러한 상황이 아이가 특별한 문제를 갖고 있어서 생기는 상황도 아니라는 겁니다.
예배라는 특징을 보면 매일도 아니고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는 상황입니다. 우스개소리지만 아직도 제 주변에 계시는 분들중 예배를 십년이상 같은 공간에서 보는데도 여전히 낯가림이 심한 분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정말 예배만 보고 바로 집으로 가시지요.
아이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태신앙을 가진 자도 예배 보는 것이 실은 그리 즐겁고 아주 재밌는 일만은 아닌 의무감일 때가 있는데 아이 입장에서 그것을 부모 없이 즐기지 못한다고 아이 문제라 할 수 있을까요?
그럼, 둘째는 하는데 왜 큰애가 되서 못하는가...라는 문제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한배에 나서도 확연히 다른 것이 아이들의 기질입니다. 그 기질을 어떻게 다루고 존중하는가에 의해 아이가 깎여져 나가기도 하고 절망하기도 하고 또 다른 극복의 발판이 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가 될 만한 상황을 아이 기질을 고려하지 않고 쥐어주고는, 다른 아이 다 하는 것을 왜 우리 아이만 힘들어할까...의 인식의 문제이죠.
다른 아이 다 하는 것을 우리 아이가 못하는 경우는 알고 보면 집집마다 다 존재합니다. 저는 많은 분들을 뵙다보니 '내 아이만 그런 것 같았는데 알고 보니 아니네'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형제간의 싸움, 서두르지 않아 속터지는 경우, 장소를 옮겼을 때 보이는 아이들의 태도 등이 대부분 그렇습니다.
내가 지금 마음이 복잡하여 오히려 반대로 아이를 떼어 놓는 연습을 하거나 상황을 아이에게 계속해서 부정적으로 경험하게 만들면 새로운 상황에 대한 적응력이 문제가 아니라 아이 마음을 닫아 놓는 다른 차원의 일이 발생합니다.
우리가 자녀를 키울 때 어디까지 받아들이고 어디까지 교육을 시켜야 하는가의 문제를 놓고 보았을 때 기준을 정하는 가장 편한 방법이 있습니다.
기본 생활 습관, 이 부분에 있어서는 다소 일관성 있고 엄격한 상황이 되더라도 아이들에게 분명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외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는 기다려 주고 격려하며 아이가 간절히 바라는 상황에 대하여 받아들이는 부모의 온화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엇나갈 이유도 없고 버릇없거나 적응 못하는 아이들로 클 염려도 없습니다.
기본 생활 습관이 확실하고 정서가 온화하고 따뜻한 상황인데 무엇이 두려울까요? 아이들마다 특징이 있습니다. 제 큰 아이도 무엇인가를 배우고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할지는 본인이 정합니다. 특히 배움에 있어서 좋든 싫든 권유는 하나 본인이 편한 방법으로 제일 잘 맞는 형태로 선택하게 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원하는 일만 하고 살 수는 없기에 꼭 필요한 몇 가지 부분에 있어서는 부모의 강력한 권한을 써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머지 것들에 대해서는 아이의 자유와 선택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물며 유아기 아이들에게 부모와 가까이 있을 권리, 내가 어떤 율동을 따라 하고싶지 않고 내 두려움을 함께 나눌 대상에 대한 표현조차 나타낼 권리가 없다면 얼마나 그 상황이 가혹한 무게가 될까요?
아이가 뒤에서 따라하지 않으면 그냥 열심히 부모 혼자 따라하면 됩니다. 가끔 집에서도 배운 것을 부모가 혼자 되뇌이고 연습하는 모습을 보여도 되구요.
부부가 교대로 예배를 보며 아이와 함께 있는 것을 오히려 즐겁게 아이와 동참한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그러다 어느날 큰 아이가 손이라도 한번 들어 춤추는 흉내를 내면 그 때를 포착하여 감탄을 연발하는 겁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글귀입니다.
‘자녀의 성공은 부모의 학력, 지위, 경제력보다 아이들에게서 일어나는 세세한 부분을 부모가 어떻게 대응하는가의 과정을 경험하는 데 있다’
아이들의 변화가 노력만큼 빨리 나오면 좋지만 나무도 옮겨심어 적응하는데 일년 이상이 걸린다 합니다.
실은 내가 느끼지 못해서 그렇지 분명 그 때보다 아이가 나아진 부분도 있는데 부모의 기대와 노력을 생각하면 속상한 마음이 받아들여지질 못하는 겁니다. 문제는 "이 나이면 이제 이 정도는 해야 하는거 아냐?"라는 기대인거죠.
그냥 같이 예배보시면서 어떤 행동에 대한 교정, 한숨도 표현하지 마시고 어쩌다 나오는 하나의 행동을 포착하셔서 끊임없이 격려하세요. 이전에 말씀드렸던 계단 형태의 발달은 쌓여져 나오는 것이지 비례곡선이 절대 아닙니다.
아이가 원할 때 같이 있어주세요.
Q. 주일에 교회에 가면 아이들을 유아부에 맡기고 예배를 보러 가는데요.
지금까지는 당번(?)을 정해서 들어가곤 했습니다.
엄마가 아이들과 들어가면 제가 예배를보고 제가 들어가면 엄마가 예배를 보고 엄마가 들어갈때는 엄마는 항상 아이들과 맨 앞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보기 때문에 아이들이 율동을하거나 할때 잘 따라합니다. 하지만 엄마가 화장실을 간다거나 다른아이를 돌보면 둘째는 전혀 개의치 않는데 큰아이가 울먹거리고 칭얼대는편이죠.
반대로 제가 들어갈때에는 전 항상 뒷자리에 앉습니다. 때문에 큰애는 제 옆에 바짝 붙어있고 꼼짝을 하지 않아요 율동도 따라하지 않죠. 둘째는 큰아이가 그러면 덩달아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좀 속상하죠. 한번은 엄마가 아파서 저만 교회를 가게된적이 있는데 둘째가 따라가겠다고 해서 둘째를 유아부에 맡기고 저혼자 예배를 봤는데 둘째는 혼자서도 잘들어가고 잘 어울립니다.
이제부터 고민 시작입니다. 아이들만 유아부에 맡기려고 하면 큰아이 때문에 둘째가 흔들립니다.
그래서 둘째만 유아부에 맡기고 큰아이는 어른들 예배에 같이 들어가려고 하는데, 이렇게 계속 같이 들어가다보면 이런 모습이 굳어져서 큰아이는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때마다 함께하려고 할까봐 걱정입니다. 심지어는 초등학교는 혼자 갈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걱정이네요.
이담에 크면 물론 떨어지겠지요. 그리고 아이들을 일부러 떨어트리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많이 안아주려고도 하는데... 둘째가 큰아이 때문에 할수 있는것도 못할까봐 걱정이고, 큰애 분리불안이 쉽게 사라지지 않아 조급함이 드네요. 휴~ 제 맘이 조급한걸까요? 앞으로는 둘째만 유아부에 맡기고 큰아이와 예배보러 가야할까요? 아니면 지금처럼 당번을 정하고 들어가야 하는 건가요? 큰아이는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서 자기가 좋아하는 미술, 피아노 그리고 발레도 하지 않습니다. 평소에는 무지 좋아하는데 선생님을 집으로 부르라고 할정도에요. 내용이 두서가 없고 장황해졌습니다만.. 그래도 좋은 답변을 기다립니다.
A. 교회 예배 시간 때 느끼는 분리 불안도 그렇고 큰 아이 때문에 둘째도 닮아 가는것 같아 걱정도 되고 그러신거죠? 부모는 하느라 했는데 여전히 아이 태도에서는 변하는 건 없는것 같고 이러다가 가장 크게 걱정되는 학교 생활에 지장이 있을까 더 맘이 쓰이시기도 하구요.
특히 예배를 볼 때 교회에서 일어나는 문제와 간단한 율동을 따라하지 않는 경우 등이 가장 많은 부모의 고민을 불러오는 문제에요. 이전에 같은 문제로 상담을 하시는 분들도 다 같은 이야기를 하시더라구요. 둘째는 안그런데 큰 애는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도 하시고, 아무것도 아닌 걸 왜 따라하지도 않고 의욕도 없어 보이고 내 옆에 붙어만 있는지 화가 나서 집에 오면 부부싸움을 하게 된다고 하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일단 그러한 분리불안은 초등 2학년 이상까지는 잘 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이후엔 아이가 스스로 부모가 함께 있는 것을 싫어하는 연령이 점점 찾아 오게 되니 계속 일어나지 않을 일을 미리 걱정하지는 마세요.
물론 학령기가 되어 아이가 학교 갈 때 뒤를 돌아보거나 눈물 흘리며 부모를 찾는 경우도 있지만 이 또한 시간과 격려 앞에서 극복 못하는 아이는 없습니다.
대부분 둘째 아이들이 분리불안을 덜 느끼는 경우들이 많은데 이는 가족 구성원 수가 이전보다 훨씬 많은 상황을 경험하기도 하고 둘째가 생기며 아이들을 떼어놓는 경우가 부모 입장에서는 줄어 들 수 밖에 없어 함께 있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아서이기도 합니다. 물론 태어난 기질도 있지요.
요는 이러한 상황이 아이가 특별한 문제를 갖고 있어서 생기는 상황도 아니라는 겁니다.
예배라는 특징을 보면 매일도 아니고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는 상황입니다. 우스개소리지만 아직도 제 주변에 계시는 분들중 예배를 십년이상 같은 공간에서 보는데도 여전히 낯가림이 심한 분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정말 예배만 보고 바로 집으로 가시지요.
아이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태신앙을 가진 자도 예배 보는 것이 실은 그리 즐겁고 아주 재밌는 일만은 아닌 의무감일 때가 있는데 아이 입장에서 그것을 부모 없이 즐기지 못한다고 아이 문제라 할 수 있을까요?
그럼, 둘째는 하는데 왜 큰애가 되서 못하는가...라는 문제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한배에 나서도 확연히 다른 것이 아이들의 기질입니다. 그 기질을 어떻게 다루고 존중하는가에 의해 아이가 깎여져 나가기도 하고 절망하기도 하고 또 다른 극복의 발판이 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가 될 만한 상황을 아이 기질을 고려하지 않고 쥐어주고는, 다른 아이 다 하는 것을 왜 우리 아이만 힘들어할까...의 인식의 문제이죠.
다른 아이 다 하는 것을 우리 아이가 못하는 경우는 알고 보면 집집마다 다 존재합니다. 저는 많은 분들을 뵙다보니 '내 아이만 그런 것 같았는데 알고 보니 아니네'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형제간의 싸움, 서두르지 않아 속터지는 경우, 장소를 옮겼을 때 보이는 아이들의 태도 등이 대부분 그렇습니다.
내가 지금 마음이 복잡하여 오히려 반대로 아이를 떼어 놓는 연습을 하거나 상황을 아이에게 계속해서 부정적으로 경험하게 만들면 새로운 상황에 대한 적응력이 문제가 아니라 아이 마음을 닫아 놓는 다른 차원의 일이 발생합니다.
우리가 자녀를 키울 때 어디까지 받아들이고 어디까지 교육을 시켜야 하는가의 문제를 놓고 보았을 때 기준을 정하는 가장 편한 방법이 있습니다.
기본 생활 습관, 이 부분에 있어서는 다소 일관성 있고 엄격한 상황이 되더라도 아이들에게 분명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외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는 기다려 주고 격려하며 아이가 간절히 바라는 상황에 대하여 받아들이는 부모의 온화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엇나갈 이유도 없고 버릇없거나 적응 못하는 아이들로 클 염려도 없습니다.
기본 생활 습관이 확실하고 정서가 온화하고 따뜻한 상황인데 무엇이 두려울까요? 아이들마다 특징이 있습니다. 제 큰 아이도 무엇인가를 배우고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할지는 본인이 정합니다. 특히 배움에 있어서 좋든 싫든 권유는 하나 본인이 편한 방법으로 제일 잘 맞는 형태로 선택하게 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원하는 일만 하고 살 수는 없기에 꼭 필요한 몇 가지 부분에 있어서는 부모의 강력한 권한을 써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머지 것들에 대해서는 아이의 자유와 선택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물며 유아기 아이들에게 부모와 가까이 있을 권리, 내가 어떤 율동을 따라 하고싶지 않고 내 두려움을 함께 나눌 대상에 대한 표현조차 나타낼 권리가 없다면 얼마나 그 상황이 가혹한 무게가 될까요?
아이가 뒤에서 따라하지 않으면 그냥 열심히 부모 혼자 따라하면 됩니다. 가끔 집에서도 배운 것을 부모가 혼자 되뇌이고 연습하는 모습을 보여도 되구요.
부부가 교대로 예배를 보며 아이와 함께 있는 것을 오히려 즐겁게 아이와 동참한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그러다 어느날 큰 아이가 손이라도 한번 들어 춤추는 흉내를 내면 그 때를 포착하여 감탄을 연발하는 겁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글귀입니다.
‘자녀의 성공은 부모의 학력, 지위, 경제력보다 아이들에게서 일어나는 세세한 부분을 부모가 어떻게 대응하는가의 과정을 경험하는 데 있다’
아이들의 변화가 노력만큼 빨리 나오면 좋지만 나무도 옮겨심어 적응하는데 일년 이상이 걸린다 합니다.
실은 내가 느끼지 못해서 그렇지 분명 그 때보다 아이가 나아진 부분도 있는데 부모의 기대와 노력을 생각하면 속상한 마음이 받아들여지질 못하는 겁니다. 문제는 "이 나이면 이제 이 정도는 해야 하는거 아냐?"라는 기대인거죠.
그냥 같이 예배보시면서 어떤 행동에 대한 교정, 한숨도 표현하지 마시고 어쩌다 나오는 하나의 행동을 포착하셔서 끊임없이 격려하세요. 이전에 말씀드렸던 계단 형태의 발달은 쌓여져 나오는 것이지 비례곡선이 절대 아닙니다.
아이가 원할 때 같이 있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