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를 위한 양육서는 없다 지나고 보니 나는 유난히 부모로서의 감각이 무딘 사람이었다. 어려운 형편 속 가정과 학교에서 강제와 억압에 주눅 든 어린 시절을 보냈고, 나의 일상은 어른들과 단절되었던 경험이 대부분이었다. 두 아이를 낳고 기르며, ‘이러이러한 부모가 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는 있었지만, 정작 그러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자연스레 체득한 것이 거의 없었다. 아이와 365일, 24시간을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물과 공기처럼 일상의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서로의 영향을 주고 받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함께해 온 어른 세계에 대해 부정적인 기억이 많았던 나는 이전에 없던 다른 방식을 찾고 적용하고자 의도적 학습에 의존했다. 내게 익숙한 방식으로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내가 겪은 고통을 그대로 물려주는 일인 것만 같았다. 첫 아이의 유아기, 어떤 어려움에 마주칠 때면 급히 관련 책을 찾아 읽고, 바로 육아 방침으로 삼았다. 그로 인해 일부 도움을 받은 적도 있지만, 후유증도 적지 않았다. 게다가 학부모가 되어 닥친 동시다발적 어려움은 도무지 답을 찾기 어려웠다. 세상의 많은 부모들이 성공사례를 쏟아내었지만, 그 누구와도 같지 않은, 단 하나 뿐인 내 아이의 특성을 온전히 담아낸 양육서는 있을 수 없었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잘해야 한다’는 의지로 긴장감만 팽팽했던 그 시절, 운 좋게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등대지기 강의가 가까운 곳에서 열려 참여할 수 있었다. |
진심을 다해 주어진 순간을 사는 두 아이 덕분에 책상에 앉아 책을 읽거나 공부하는 일에 취약했던 나의 좁은 시야는 점차 넓게 확장되어 갔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부모 교육과 여러 활동을 통해 ‘이러이러한 부모가 되고 싶지 않다’는 막연한 소망을 어떻게 현재의 환경에서 만들어 갈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같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누군가 전해준 지식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재해석하는 과정을 거치며 단편적인 지식으로 인한 성급한 전환의 부작용을 막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함께 고민하는 사람들’에 속한 안온함은 추구하는 바를 향해 계속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 주었다. 당시 초등학교 1학년과 만 4세였던 두 아이는 이십 대 청년들로 성장했다. 사교육에 기댄 고밀도 학업 경쟁에 참여하지 않은 두 아이는 어린 시절에 이어 지금도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고유의 감각으로 지나고 있다. 때로 한가롭게, 때로 치열하게, 때로 요란하게, 때로 조용하게... 그 과정과 결과에 대해 나는 감히 해석할 수 없다. 따라서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회원 자녀로 키웠더니 이렇더라’고 아들들의 삶을 논할 수는 없다. 하지만 확신하는 것은 저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순간들을 진심을 다해 마주하며 지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학업 경쟁에 참여하고, 안 하고’와 별개의 문제이므로 부모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회원인 것과 어떤 관계가 있다고 연관 지어 말할 수는 없겠다. 다만 가장 가까이서 오랜 시간 그 과정을 지켜보는 나라는 한 사람의 변화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말이 있다. |
나의 현재를 부정하는 부모 등대지기 학교를 통해 함께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일상의 영역에서 드문, ‘시대를 앞서가는 어른들’을 깊이 만날 수 있었다. 그런 경험들을 통해 ‘좋은 부모가 되고 싶다면 내가 좋은 사람이 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과거,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잘하려 들수록 내 삶은 고단했다. 게다가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현재를 부정하는 부모’와 살아가는 무거움을 얹고 말았다. 하지만 점차 ‘내가 되고 싶은 사람으로 성장하는 일, 살고 싶은 삶을 일구는 일에 집중하면서, 나는 누구보다 내가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 나를 길러갈 수 있었다. 어떤 부분이나 특정 순간의 나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다면적이고 변화무쌍한 나의 모든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유연하고 순전한 한 사람으로 나를 키워 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학업, 직업, 경제적 성취와는 별개의 영역으로, 누구나 꿈꾸고 다가가면 획득할 수 있는 정체성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세상의 변화 속에서 자칫 위축되지 않도록 계속 가꾸어 가야 하는 생동감이 있기에 더욱 값진 자산이 된다. |
자기 존재에 대해 감각하는 사람 ‘나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지금의 내 정체성이 항상성을 지녔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감각을 안다는 것은 일시적으로 위축되거나 흔들릴 때, 어느 지점으로 되돌아가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는 뜻이다. 자녀를 향한 지나친 걱정이나 불안은 자기 존재의 중심성을 잃었을 때 극대화된다. ‘아이가 무언가를 열심히 하지 않아서, 주변 환경이 나빠서’인 경우보다 대개 부모 스스로 ‘나’라는 존재의 현재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할 때 과도한 걱정과 불안으로 아이를 바라보게 된다. 그런 불안으로 인해 아이를 위해 무언가 쏟아부으려 하는 것은 마치 중심을 잃은 나무가 뿌리를 들어 올려 가지와 열매를 감싸려 드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경제적 성취 경쟁에 압도된 세상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모두 거대 가스라이팅의 무력한 대상으로 살아갈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무언가를 잘 해야만 살아갈 가치가 있다’라는 착각은 타인을 향한 차별과 혐오, 자신을 향한 자책과 무력감을 동력으로 대립과 고립의 사회를 키워가고 있다. 지난 겨울 겪은 정치적 혼란이 바로 그 후유증임을 우리 모두 통감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역량은 ‘자기 존재’에 대한 정확한 감각이 아닐까 싶다. 자기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부모는 아이의 현재를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다. 자기 내면의 세계를 차별 없이 유유히 탐색한다는 것은, 한 존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다양한 요소와 만나 변화를 갖게 되는지에 대해 알아가는 일이다. 지나온 시간 속 자신의 여러 순간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듯, 내 곁에 있는 한 존재의 현재를 함부로 평가하고 판단하지 않는 것. 그런 시선을 갖게 되었을 때 부모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매우 간결해진다. 아이의 현재를 존중하고 응원하는 일, 그것을 아이는 사랑으로 감각한다. 사랑받는 사람은 어떤 순간에도 자기 존재를 바라보는 감각을 잃지 않는다. 세상의 악화를 일순간에 통제할 수는 없지만, ‘나’라는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며 아이 곁의 건강한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은 이전 세대의 전쟁 트라우마에 지배된 우리 세대의 고통을 아이들에게 물려주지 않는 일이며, 그 어떤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자기 존재를 향한 건강한 시선을 갖도록 자연스러운 흐름이 되어주는 일이다. |
나의 불안을 자녀에게 함부로 투사하지 않는 삶 십수 년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회원으로 살아오면서 키워온 ‘나’라는 한 사람의 부모 정체성은 ‘나의 걱정과 불안을 자식에게 함부로 투사하지 않는 사람’이다. 고밀도 경쟁 사회에서 조금도 불안하지 않은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남녀노소, 학력, 경제력, 그 모두와 상관없이 누구나 동등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불안을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너무 이른 나이에 다른 사람의 불안마저 떠안는 무거움은 자기 날개로 살아가는 감각을 기르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줄 수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통해 ‘나’라는 한 사람의 성장에 주목하면서, 나는 어린 시절 만나고 싶었던 어른의 모습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자긍심을 얻었다. 무지와 가난으로 서럽고 억울했던 자기 삶을 자녀들에게 보상받으려 했던 부모 세대의 과한 욕망에 멍들었던 나를, 전혀 다른 세상의 빛과 감촉에 닿게 한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지금도 더 좋은 삶을 가꾸어가고 싶은 나의 든든하고 안전한 요람이다. |
*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함께 하고픈 선생님을 언제나 환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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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를 위한 양육서는 없다
지나고 보니 나는 유난히 부모로서의 감각이 무딘 사람이었다. 어려운 형편 속 가정과 학교에서 강제와 억압에 주눅 든 어린 시절을 보냈고, 나의 일상은 어른들과 단절되었던 경험이 대부분이었다. 두 아이를 낳고 기르며, ‘이러이러한 부모가 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는 있었지만, 정작 그러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자연스레 체득한 것이 거의 없었다.
아이와 365일, 24시간을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물과 공기처럼 일상의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서로의 영향을 주고 받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함께해 온 어른 세계에 대해 부정적인 기억이 많았던 나는 이전에 없던 다른 방식을 찾고 적용하고자 의도적 학습에 의존했다. 내게 익숙한 방식으로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내가 겪은 고통을 그대로 물려주는 일인 것만 같았다.
첫 아이의 유아기, 어떤 어려움에 마주칠 때면 급히 관련 책을 찾아 읽고, 바로 육아 방침으로 삼았다. 그로 인해 일부 도움을 받은 적도 있지만, 후유증도 적지 않았다. 게다가 학부모가 되어 닥친 동시다발적 어려움은 도무지 답을 찾기 어려웠다. 세상의 많은 부모들이 성공사례를 쏟아내었지만, 그 누구와도 같지 않은, 단 하나 뿐인 내 아이의 특성을 온전히 담아낸 양육서는 있을 수 없었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잘해야 한다’는 의지로 긴장감만 팽팽했던 그 시절, 운 좋게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등대지기 강의가 가까운 곳에서 열려 참여할 수 있었다.
진심을 다해 주어진 순간을 사는 두 아이
덕분에 책상에 앉아 책을 읽거나 공부하는 일에 취약했던 나의 좁은 시야는 점차 넓게 확장되어 갔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부모 교육과 여러 활동을 통해 ‘이러이러한 부모가 되고 싶지 않다’는 막연한 소망을 어떻게 현재의 환경에서 만들어 갈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같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누군가 전해준 지식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재해석하는 과정을 거치며 단편적인 지식으로 인한 성급한 전환의 부작용을 막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함께 고민하는 사람들’에 속한 안온함은 추구하는 바를 향해 계속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 주었다.
당시 초등학교 1학년과 만 4세였던 두 아이는 이십 대 청년들로 성장했다. 사교육에 기댄 고밀도 학업 경쟁에 참여하지 않은 두 아이는 어린 시절에 이어 지금도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고유의 감각으로 지나고 있다. 때로 한가롭게, 때로 치열하게, 때로 요란하게, 때로 조용하게... 그 과정과 결과에 대해 나는 감히 해석할 수 없다. 따라서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회원 자녀로 키웠더니 이렇더라’고 아들들의 삶을 논할 수는 없다. 하지만 확신하는 것은 저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순간들을 진심을 다해 마주하며 지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학업 경쟁에 참여하고, 안 하고’와 별개의 문제이므로 부모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회원인 것과 어떤 관계가 있다고 연관 지어 말할 수는 없겠다. 다만 가장 가까이서 오랜 시간 그 과정을 지켜보는 나라는 한 사람의 변화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나의 현재를 부정하는 부모
등대지기 학교를 통해 함께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일상의 영역에서 드문, ‘시대를 앞서가는 어른들’을 깊이 만날 수 있었다. 그런 경험들을 통해 ‘좋은 부모가 되고 싶다면 내가 좋은 사람이 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과거,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잘하려 들수록 내 삶은 고단했다. 게다가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현재를 부정하는 부모’와 살아가는 무거움을 얹고 말았다.
하지만 점차 ‘내가 되고 싶은 사람으로 성장하는 일, 살고 싶은 삶을 일구는 일에 집중하면서, 나는 누구보다 내가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 나를 길러갈 수 있었다. 어떤 부분이나 특정 순간의 나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다면적이고 변화무쌍한 나의 모든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유연하고 순전한 한 사람으로 나를 키워 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학업, 직업, 경제적 성취와는 별개의 영역으로, 누구나 꿈꾸고 다가가면 획득할 수 있는 정체성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세상의 변화 속에서 자칫 위축되지 않도록 계속 가꾸어 가야 하는 생동감이 있기에 더욱 값진 자산이 된다.
자기 존재에 대해 감각하는 사람
‘나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지금의 내 정체성이 항상성을 지녔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감각을 안다는 것은 일시적으로 위축되거나 흔들릴 때, 어느 지점으로 되돌아가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는 뜻이다. 자녀를 향한 지나친 걱정이나 불안은 자기 존재의 중심성을 잃었을 때 극대화된다. ‘아이가 무언가를 열심히 하지 않아서, 주변 환경이 나빠서’인 경우보다 대개 부모 스스로 ‘나’라는 존재의 현재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할 때 과도한 걱정과 불안으로 아이를 바라보게 된다. 그런 불안으로 인해 아이를 위해 무언가 쏟아부으려 하는 것은 마치 중심을 잃은 나무가 뿌리를 들어 올려 가지와 열매를 감싸려 드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경제적 성취 경쟁에 압도된 세상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모두 거대 가스라이팅의 무력한 대상으로 살아갈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무언가를 잘 해야만 살아갈 가치가 있다’라는 착각은 타인을 향한 차별과 혐오, 자신을 향한 자책과 무력감을 동력으로 대립과 고립의 사회를 키워가고 있다. 지난 겨울 겪은 정치적 혼란이 바로 그 후유증임을 우리 모두 통감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역량은 ‘자기 존재’에 대한 정확한 감각이 아닐까 싶다.
자기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부모는 아이의 현재를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다. 자기 내면의 세계를 차별 없이 유유히 탐색한다는 것은, 한 존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다양한 요소와 만나 변화를 갖게 되는지에 대해 알아가는 일이다. 지나온 시간 속 자신의 여러 순간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듯, 내 곁에 있는 한 존재의 현재를 함부로 평가하고 판단하지 않는 것. 그런 시선을 갖게 되었을 때 부모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매우 간결해진다. 아이의 현재를 존중하고 응원하는 일, 그것을 아이는 사랑으로 감각한다.
사랑받는 사람은 어떤 순간에도 자기 존재를 바라보는 감각을 잃지 않는다. 세상의 악화를 일순간에 통제할 수는 없지만, ‘나’라는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며 아이 곁의 건강한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은 이전 세대의 전쟁 트라우마에 지배된 우리 세대의 고통을 아이들에게 물려주지 않는 일이며, 그 어떤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자기 존재를 향한 건강한 시선을 갖도록 자연스러운 흐름이 되어주는 일이다.
나의 불안을 자녀에게 함부로 투사하지 않는 삶
십수 년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회원으로 살아오면서 키워온 ‘나’라는 한 사람의 부모 정체성은 ‘나의 걱정과 불안을 자식에게 함부로 투사하지 않는 사람’이다. 고밀도 경쟁 사회에서 조금도 불안하지 않은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남녀노소, 학력, 경제력, 그 모두와 상관없이 누구나 동등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불안을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너무 이른 나이에 다른 사람의 불안마저 떠안는 무거움은 자기 날개로 살아가는 감각을 기르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줄 수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통해 ‘나’라는 한 사람의 성장에 주목하면서, 나는 어린 시절 만나고 싶었던 어른의 모습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자긍심을 얻었다. 무지와 가난으로 서럽고 억울했던 자기 삶을 자녀들에게 보상받으려 했던 부모 세대의 과한 욕망에 멍들었던 나를, 전혀 다른 세상의 빛과 감촉에 닿게 한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지금도 더 좋은 삶을 가꾸어가고 싶은 나의 든든하고 안전한 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