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하는 날이었다. 학부모가 된다는 기쁨과 그만큼 자란 아이를 보는 뿌듯함을 누리고 싶은 날. 엄마 미소를 지으며 입학식을 지켰다가 입학식이 끝나면 가족과 함께 짜장면을 먹으러 가리라.
그날 우리 가족은 짜장면을 먹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두운 얼굴로 입학식을 마친 아이는 별안간 화를 내며 뛰쳐나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 가출이라니.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다. 초등학생 1학년이 학교를 가다 말다 등교 거부에 이르렀는데, 어떤 이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에 나가 보라고 하기도 했고 시어머니는 용한 점쟁이에게 묻고 왔다며 아이 속옷을 내어 달라고 하셨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을 때, 반에서 3등을 한 적이 있다. 신이 나서 집으로 달려갔다. ‘엄마 아빠한테 자랑하면 오늘 짜장면을 먹을 수 있겠지’ 가슴이 벅차고 뿌듯했다. 그러나 “어, 그래 잘했네.” 무심히 지나치는 부모님의 그 한마디에서, 시험 잘 본 딸에게 짜장면 한 그릇 사주지 못하는 가난과 정서적 인색함이 어린 마음에 콕 박혀버리고 말았다.
내가 부모가 되었을 때, 나는 기분 좋게 짜장면을 사 줄 수 있는 부모라는 자신이 있었다. 내 아이는 번듯한 직업을 가진 부모를 두고, 부족함 없이 똑똑하게 자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 믿음은 그렇게 일찍, 그토록 험난하고 고통스럽게 깨졌다. 초등학교 1학년 입학식에서부터.
등급을 매기지 않는 부모 모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만난 것은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정도 되었을 무렵이었다. 긴 놀이 치료와 부모 상담, 그리고 수많은 부모 교육을 듣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아이의 학교 생활은 좋아졌다. 하지만 아이와의 애착 문제, 아이의 자존감 등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 것들 때문에 안개 속을 헤매는 것 같았다.
새로운 만남. 그리고 좋은 만남. 사교육걱정없는 지역등대모임. 세상에! 이런 대화를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 있었다. 우리 아이가 무슨 학원을 다니는지, 어떻게 하면 시험을 잘 볼 수 있는지, 집은 자가인지 전세인지, 끊임없이 비교하고 자신의 등급을 매기지 않아도 되는 모임이었다.
책을 읽고, 교육 문제를 고민하고, 아이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에 대한 방법을 고민했다. 속 썩이는 아이 욕을 마음껏 해도 되었다. 같이 웃고 같이 울었다. 마음이 맞으니 지역 부모들 초대하는 행사(지역 미니 등대) 준비를 해도, 소모임 기획을 해도, 벼룩시장을 열어도 힘든 것이 없이 즐거웠다. 서로 돕고 지지해 주었다. 나는 성장할 수 있었고 비로소,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될 준비가 되었다.
나와는 다른 세계를 가진 아이
아이와의 관계를 다시 돌아보는 힘이 생겼다. 어떻게 하면 ‘아이를 내 마음에 맞게, 남보기에 부족하지 않게 키울까’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아이가 엄마의 사랑을 느끼지? 이 아이는 어떤 때 행복한 아이지?’라는 질문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아이는 감정을 느끼는 깊이가 깊고 중요하며, 따뜻하고 사랑이 가득한 눈길을 생존 자원으로 사용하는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이 가득한 방에서 혼자 실컷 책이나 보고 싶었던 나와는 다른 세계를 가진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그렇게 애를 쓰며 성취하고 싶었던 것들이 사실은 실체도 없는 누군가에게 맞춘 허상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배워왔고 무엇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는가. 교육이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소비하는 삶이 행복한 것인가. 나는 우리 아이가 어떤 삶을 살기를 바라는가.
다시 돌아온 아이에게
등교를 하지 못하던 초등학교 1학년 아이의 손을 잡고 같이 학교로 향했다. 1학년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소풍을 갔다. 8살 친구들은 학교 오기가 힘들었던 친구에게 기꺼이 손을 내어 같이 가자고 했다. 함께 놀았고 서로 지지하고 응원해 주었다. 사람은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그래야 살 수 있는데… 나는 어떤 어른이었는가.
천사 같던, 우리 아이의 1학년 친구들이 초등 고학년부터 학업스트레스로 힘들어 하고 갈등을 빚는 모습을 볼 때 마음이 괴로웠다. 저 아이들 모두 자신의 색깔대로 건강하고 효능감 있게 살아가는 세상이 되어야 하는데.
공군에 입대하다
입시라는 이벤트는 끝이 있다. 대다수가 패배자라 느끼고 입을 닫는다. 하지만 나는 이미 무언가를 알아버린 것 같았다. 대학 이름보다는, 어려운 상황에서 학교 과정을 다 이수하고 학습에도 도전해본 아이가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참 잘했다. 엄마는 참 기쁘다.”
아이는 나에게 말한다.
“엄마는 세상 물정을 몰라!”
아이는 혼자 준비해서 지금은 들어가기 어렵다는 공군으로 군생활을 하고 있다. 아이가 어른이 되었다. 물리적인 나이로 성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삶을 계획하고 준비하고 있다. 다 컸구나.
아이 하나를 키우는 것이 참 힘들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함께 크는 성장통이 아프기도 했다. 비로소 알게 되었다. 자식을 비롯한 타인이라는 세계와 이해하고 소통하는 법을. 그렇게 함께 살아가는 법을. 그것이 내 삶의 생기와 활기가 되어준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갑자기 초등학교 1학년이 되어버린 듯한 생소함과 막막함이 버겁다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손을 잡아보았으면 좋겠다.
초등학교 입학식날 가출
큰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하는 날이었다. 학부모가 된다는 기쁨과 그만큼 자란 아이를 보는 뿌듯함을 누리고 싶은 날. 엄마 미소를 지으며 입학식을 지켰다가 입학식이 끝나면 가족과 함께 짜장면을 먹으러 가리라.
그날 우리 가족은 짜장면을 먹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두운 얼굴로 입학식을 마친 아이는 별안간 화를 내며 뛰쳐나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 가출이라니.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다. 초등학생 1학년이 학교를 가다 말다 등교 거부에 이르렀는데, 어떤 이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에 나가 보라고 하기도 했고 시어머니는 용한 점쟁이에게 묻고 왔다며 아이 속옷을 내어 달라고 하셨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을 때, 반에서 3등을 한 적이 있다. 신이 나서 집으로 달려갔다. ‘엄마 아빠한테 자랑하면 오늘 짜장면을 먹을 수 있겠지’ 가슴이 벅차고 뿌듯했다. 그러나 “어, 그래 잘했네.” 무심히 지나치는 부모님의 그 한마디에서, 시험 잘 본 딸에게 짜장면 한 그릇 사주지 못하는 가난과 정서적 인색함이 어린 마음에 콕 박혀버리고 말았다.
내가 부모가 되었을 때, 나는 기분 좋게 짜장면을 사 줄 수 있는 부모라는 자신이 있었다. 내 아이는 번듯한 직업을 가진 부모를 두고, 부족함 없이 똑똑하게 자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 믿음은 그렇게 일찍, 그토록 험난하고 고통스럽게 깨졌다. 초등학교 1학년 입학식에서부터.
등급을 매기지 않는 부모 모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만난 것은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정도 되었을 무렵이었다. 긴 놀이 치료와 부모 상담, 그리고 수많은 부모 교육을 듣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아이의 학교 생활은 좋아졌다. 하지만 아이와의 애착 문제, 아이의 자존감 등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 것들 때문에 안개 속을 헤매는 것 같았다.
새로운 만남. 그리고 좋은 만남. 사교육걱정없는 지역등대모임. 세상에! 이런 대화를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 있었다. 우리 아이가 무슨 학원을 다니는지, 어떻게 하면 시험을 잘 볼 수 있는지, 집은 자가인지 전세인지, 끊임없이 비교하고 자신의 등급을 매기지 않아도 되는 모임이었다.
책을 읽고, 교육 문제를 고민하고, 아이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에 대한 방법을 고민했다. 속 썩이는 아이 욕을 마음껏 해도 되었다. 같이 웃고 같이 울었다. 마음이 맞으니 지역 부모들 초대하는 행사(지역 미니 등대) 준비를 해도, 소모임 기획을 해도, 벼룩시장을 열어도 힘든 것이 없이 즐거웠다. 서로 돕고 지지해 주었다. 나는 성장할 수 있었고 비로소,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될 준비가 되었다.
나와는 다른 세계를 가진 아이
아이와의 관계를 다시 돌아보는 힘이 생겼다. 어떻게 하면 ‘아이를 내 마음에 맞게, 남보기에 부족하지 않게 키울까’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아이가 엄마의 사랑을 느끼지? 이 아이는 어떤 때 행복한 아이지?’라는 질문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아이는 감정을 느끼는 깊이가 깊고 중요하며, 따뜻하고 사랑이 가득한 눈길을 생존 자원으로 사용하는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이 가득한 방에서 혼자 실컷 책이나 보고 싶었던 나와는 다른 세계를 가진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그렇게 애를 쓰며 성취하고 싶었던 것들이 사실은 실체도 없는 누군가에게 맞춘 허상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배워왔고 무엇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는가. 교육이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소비하는 삶이 행복한 것인가. 나는 우리 아이가 어떤 삶을 살기를 바라는가.
다시 돌아온 아이에게
등교를 하지 못하던 초등학교 1학년 아이의 손을 잡고 같이 학교로 향했다. 1학년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소풍을 갔다. 8살 친구들은 학교 오기가 힘들었던 친구에게 기꺼이 손을 내어 같이 가자고 했다. 함께 놀았고 서로 지지하고 응원해 주었다. 사람은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그래야 살 수 있는데… 나는 어떤 어른이었는가.
천사 같던, 우리 아이의 1학년 친구들이 초등 고학년부터 학업스트레스로 힘들어 하고 갈등을 빚는 모습을 볼 때 마음이 괴로웠다. 저 아이들 모두 자신의 색깔대로 건강하고 효능감 있게 살아가는 세상이 되어야 하는데.
공군에 입대하다
입시라는 이벤트는 끝이 있다. 대다수가 패배자라 느끼고 입을 닫는다. 하지만 나는 이미 무언가를 알아버린 것 같았다. 대학 이름보다는, 어려운 상황에서 학교 과정을 다 이수하고 학습에도 도전해본 아이가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참 잘했다. 엄마는 참 기쁘다.”
아이는 나에게 말한다.
“엄마는 세상 물정을 몰라!”
아이는 혼자 준비해서 지금은 들어가기 어렵다는 공군으로 군생활을 하고 있다. 아이가 어른이 되었다. 물리적인 나이로 성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삶을 계획하고 준비하고 있다. 다 컸구나.
아이 하나를 키우는 것이 참 힘들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함께 크는 성장통이 아프기도 했다. 비로소 알게 되었다. 자식을 비롯한 타인이라는 세계와 이해하고 소통하는 법을. 그렇게 함께 살아가는 법을. 그것이 내 삶의 생기와 활기가 되어준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갑자기 초등학교 1학년이 되어버린 듯한 생소함과 막막함이 버겁다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손을 잡아보았으면 좋겠다.
(+ 진학 스토리)😊 조혜영 선생님의 자녀 이야기도 궁금하다면😊 최정은 선생님의 다른 이야기 <인터뷰> 경기도 신도시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아들의 진학 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