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엄마의 불안을 넘어선 기록 - 이경숙

202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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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장 STORY - 이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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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면접을 마친 딸에게 배운 것

 

딸아이가 네이버 개발자 최종 면접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였다. 곧장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받은 질문과 면접장의 분위기를 하나하나 알려줬다. 친구는 같은 회사, 다른 부서 면접을 며칠 뒤에 앞두고 있었다. 나는 무심결에 물었다.

“그걸 왜 다 알려줬니? 너는 떨어지고, 그 친구는 합격하면 어쩌려고….”

딸은 순간 얼굴을 붉히며 단호히 말했다.

엄마실망이야경쟁보다 친구가 더 소중하다고 가르쳐 준 사람은 엄마였잖아.”


그날 밤나는 한참을 잠들지 못했다시골 작은 집에서 시작된 자녀 교육의 긴 여정 끝에내 아이가 내게 다시 가르쳐 준 한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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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마을 맞벌이 엄마의 사교육 불안

 

우리가 사는 곳은 문경의 작은 시골 마을이다. 돌봐 줄 조부모도, 늦은 귀가를 대신해 줄 이웃도 없었다. 맞벌이를 하는 나는 늘 집에 늦게 들어왔고, 딸은 어릴 적부터 돌봄의 빈자리를 방과 후 수업과 학원으로 채워야 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늘 전일제였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방과 후 수업이 끝나면 피아노 학원, 미술 학원, 영어 방문 수업까지 이어졌다. 혹시라도 아이가 혼자 집에서 다칠까 봐, 재능 계발의 기회를 놓칠까 봐 걱정되었다.

 

하지만 억지로 일정표에 채워 넣은 사교육은 오래가지 못했다. 기능만 가르치는 미술 학원은 딸의 창의력을 무디게 했고, 영어 방문 교사의 강압적인 수업 방식은 영어에 대한 흥미를 앗아갔다. 결국 나는 사교육과 잡은 손을 하나씩 놓았다. 사교육을 그만두고 나니 두려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내가 너무 무책임한 건 아닐까?’, ‘아이의 적성과 흥미를 계발할 기회를 뺏은 것은 아닐까? 그 무렵, 나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라는 단체에서 매주 보내주는 이메일을 붙잡고 마음을 다잡았다. 사교육 대신 아이를 믿고 기다려 주는 것이 오히려 부모로서 중심을 잃지 않는 길이라는 걸, 조금씩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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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서 자라는 힘

 

초등학교 3학년 방학, 처음으로 딸에게 캠프를 권했다. 지리산 청학동에서의 4박 5일 캠프가 시작이었다. 시골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혼자 목적지까지 가야 했고, 낯선 친구들과 첫 밤을 보내야 했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어린아이를 혼자 보내도 될까?’ 수십 번도 더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딸은 오히려 설레어했다. 그 뒤로 캠프는 방학마다 딸의 삶에 자리 잡았다.

 

해병대 캠프에서는 태안반도의 모래바람을 맞으며 체력을 키웠고 협력의 가치를 배웠다. 창의력 캠프에선 팀을 이뤄 밤늦게까지 새로운 문제 해결 방법을 고민하면서 창의적 문제 해결력을 키웠고, 경제 캠프에서는 작은 시장을 열어 가상 화폐로 물건을 사고팔며 합리적인 소비와 시장경제를 배웠다. 국토 순례 대장정에서는 한여름 뙤약볕 속에서 무거운 배낭을 메고 낯선 땅을 걸으며 끈기와 극복 의지를 키웠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종교단체 마음 수련 캠프에 두 번이나 다녀왔다. 어린 나이에 사찰에서 1,000배 절을 하며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땀과 눈물을 흘리며 이겨냈다.

 

이 모든 캠프의 원칙은 하나였다. 본인이 원할 것스스로 준비하고스스로 가서 스스로 부딪힐 것.’ 그 속에서 딸은 자립심환경 적응력대인관계 맺는 법낯선 세계로의 도전 의식을 스스로 배웠다그 시간들이 지금도 내 딸을 지탱하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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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 작은 컴퓨터 교실

 

우리 지역엔 사교육 기관이 많지 않기에 학교 방과 후 수업이 귀했다. 작은 교실 안에서도 딸은 할 수 있는 걸 다 해봤다. 색종이 접기, 줄넘기, 수채화, 건축하기, 악기반, 독서반…. 그리고 그중 딸을 가장 사로잡았던 것은 컴퓨터였다. 작은 시골 마을이었지만, 컴퓨터 활용 능력반 하나만큼은 딸의 세상을 넓혀 줬다. 고학년이 되어서는 학교 대표로 지역 교육청 정보 검색 대회에 나가 상도 받았다. 컴퓨터는 딸의 손에 자연스레 익었다. 어린 시절 방과 후의 그 소박한 교실이 지금의 프로그램 개발자로 이어진 첫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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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생각 공책 

 

나는 한글 공부를 따로 시키지 않았다. 피곤해도 밤마다 책을 읽어 주었고, 길거리 간판을 읽으며 한글은 자연스럽게 딸에게 스며들었다.책은 딸과 나를 이어주는 대화의 문이었다. 중학교 3년 내내 딸은 국어 시간에 ‘생각 공책’을 썼다. 공책 이름은 ‘말똥구리’. 사춘기의 외로움과 혼란을 한 장 한 장에 꾹꾹 눌러 담았다. 글을 쓰며 딸은 스스로를 위로하고다시 일어섰다또한 국어 선생님의 따뜻한 댓글이 딸의 성장을 많이 도왔다. 그 공책은 아직도 딸의 방 책장 어딘가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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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깊은 밤의 터널 

 

그래도 위기는 찾아왔다. 고등학교 1학년, 딸은 마침내 무너졌다. 하교 후 딸은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엄마, 나 학교 그만두고 싶어. 검정고시 볼래.”

 

눈은 붉었고, 손끝은 차가웠다. 나는 당황했다. 맞벌이하는 내 빈자리에서 아이가 버티던 마음이 이리도 곪아 있을 줄 몰랐다. 뒤늦었지만 딸을 이해하기 위해 나는 상담 심리 공부를 했다. 담임 선생님과 진로 상담 선생님을 여러 번 찾아갔다.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밤늦게까지 대책도 논의했다. 결국 우리 부부는 자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지만 마지막에 열정적인 교장 선생님이 딸을 붙잡아 주셨다. 마침 딸이 맹장 수술로 입원했는데, 병원에 병문안까지 오셔서 딸을 격려해 주셨다. 여러 차례 교장실에서 가족 상담이 이루어졌다.

 

마지막에 딸은 무표정으로 선심 쓰듯이 “학교는 그냥 다녀줄게”라고 말했다. 그 한마디에 나는 가슴이 무너졌다. 그날 밤, 나는 딸 앞에 울었다. 미안하다엄마가 잘못했다네가 네 삶을 스스로 설계할 수 있게 할게엄마는 이제 너를 더 이상 억압하지 않을게.” 그날의 사과는 내 인생 가장 부끄럽고 가장 용기 있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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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 빠진 독을 채운 아이

 

그 후 딸은 수학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불안한 마음에 스스로 과외를 받겠다고 했다. 나는 흔쾌히 허락했다. 그러나 어느 날, 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엄마, 불안해서 과외를 받았는데…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 같아. 과외비만 빠져나가는 것 같아. 그만두고 나 혼자 해 보고 싶어.”

 

나는 그 순간 고개를 끄덕였다. 딸은 과외를 멈춘 후과외 교사의 일방적 계획에 허겁지겁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공부에서 벗어났다딸은 자기 속도에 맞는 학습 계획을 스스로 세워 수학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수학은 맹목적으로 따라갔던 두려운 과목이 아니라, 자기가 목표를 세워 풀 수 있는 퍼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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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라는 용기

 

나는 약속을 지켰다. 딸의 학업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대신 딸의 자립심을 끝까지 믿었다. 대학 원서 6장은 모두 컴퓨터 관련 학과였다. 학교생활기록부에도 컴퓨터 관련 학과에 대한 열망과 노력의 흔적이 일관되게 남았다. 시골에서 코딩 교육을 전혀 받아 보지 못했지만, 딸은 서울에 있는 대학교 IT학부에 당당히 합격했다. 하지만 졸업이 다가오자 딸은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섰다. 진로가 막막해 보이던 딸에게 나는 교육행정직 공무원을 권유했다. 미래가 두려웠던 딸은 한 번쯤 해 보자며 내 제안을 따랐다. 그러나 몇 달 뒤, 긴 편지가 도착했다.

 

“공무원 공부를 하는 동안 한순간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어. 공부하면서는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나 싶었고, 공부를 멈추면 비싼 수강료가 떠올라 죄책감이 들었어. 그런데 분명한 게 하나 있어. 코딩 공부할 땐 며칠 밤을 새워도 지루하다는 생각이 안 들었거든. 이 공부는 너무 지겨워서 못하겠어. 공무원 공부를 하면서 오히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뭔지 알았어코딩이 훨씬 재미있어.”


나는 딸에게 답장했다.

“엄마는 너의 포기할 줄 아는 용기가 자랑스럽다. 시작하는 용기보다 더 큰 용기가 바로 멈출 줄 아는 거야. 이게 아니다 싶으면 과감히 놓아야 해. 재미있는 걸 선택해. 엄마는 언제나 네 편이야.”

 

딸은 자기 선택에 책임지고 싶다고 했다. 공무원 인터넷 수강료의 절반은 양도해 돌려받고, 나머지 절반은 아르바이트로 갚겠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갚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딸의 책임감을 더 키워 주고 싶었다. 몇 달 뒤, 딸은 스스로 번 돈 185만 원을 내 통장에 깔끔히 입금했다. 그 뒤 딸은 다시 코딩 공부로 돌아갔다. 연합 동아리 친구들과 스터디를 만들어 밤을 새우며 몰입했다. 그리고 대학 4학년 6월, 딸은 네*버 개발자로 당당히 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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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아이를 믿으면

 

작은 시골 마을의 맞벌이 엄마였던 나는 불안했다. 사교육으로 채우려 했고, 체험으로 대체하려 했다. 캠프 가방을 스스로 싸고 낯선 곳으로 떠나는 딸을 지켜보며 마음속으로 수백 번씩 흔들렸다. 혹시라도 넘어질까혹시라도 길을 잃을까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 긴 시간 동안 내가 딸에게 물려주고자 했던 것은 한 가지였다. 스스로의 길을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힘. 자립심. 그리고 지금 딸이 내게 다시 가르쳐주었다. “엄마, 경쟁보다 친구가 더 소중해.” 이제 나는 안다. 부모가 아이를 믿으면, 언젠가는 아이가 부모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든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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