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교육에 가장 좋은 길이 있을까? 사실 공모전에 뭔가를 쓸 자신이 있는 건 아니었다. 권유를 받고 든 처음 생각은 '이제 자녀교육에 자신을 잃었는데…'였다. 한때 이렇게 아이를 키우면 되겠다 자신한 적이 있었다. 희미한 곳에서 길을 발견한 듯 점점 더 뚜렷해지는 확신에 기뻤던 적도 있었다. 결과가 나오는 듯도 했고, 그래서 뿌듯함과 자부심에 들뜬 적도 있었다. 그러나 큰 아이가 대학교 4학년이 된 지금, 자녀 교육이란 특별한 방법이 없는 것 같다.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잃었고 아이가 자랑할 만한 아이로 클 거라는 자신도 잃었다. 아니 ‘그런 자신감은 그리 의미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말일 것이다. |
나의 어린 시절과는 달랐으면 큰 아들이 6살, 다니던 교회 대예배 시간에 송인수 선생님(사교육걱정없는세상 설립자)이 오셔서 특강을 하셨다. 담임 목사님이 설교 대신 주신 시간이었다. 담임 목사님이 이미 큰 감동을 받고 내주신 시간이었을 터, 나도 큰 감동을 받았고 이전에 없던 인터넷과 초경쟁 시대에서 어디로 가야하나 고민하던 내게 희망이 되는 시간이었다. 어린 시절 엄마와 의사소통이 잘 안 되고 성취 압박을 많이 받던 나는 아이들과 좀 더 나은 관계를 갖고 싶었고, 아이들이 스스로 성취하는 기쁨을 느끼는 이상적인 상황을 꿈꿨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나에게 안내자가 되어 줄 것 같았다. 우리 부부는 ‘경쟁으로 죽어 가는 아이들이 없는 세상’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단체의 목적에 동의해서 많은 기부를 했다. 우리는 그것을 기부가 아니라 투자라고 생각했고, 더 나아진 세상에서 다른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이 그 수혜를 받기 원했다. 기부를 하고 단체의 행사에 아이들과 참석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나와는 달리 확신에 차 있어 보이는 그들을 보면서 나도 확신을 얻기를 바랐다. 좋은 길이 있을 것이고 단지 그 길을 찾지 못한 것뿐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원래 모든 문제에 길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자녀 교육도 뭔가 가장 좋은 길이 있다고, 찾기만 하면 된다고 길 찾기에 열심을 냈다. 그러나 아이들이 자랄수록 나는 더 큰 혼란을 맞이했다. |
총명했지만 성실한 태도가 부족한 첫째 엄마의 압박이 힘들었던 나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공부를 접하게 하고 싶었고 경쟁을 줄여 주고 싶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방향도 그러했기에 나와 잘 맞았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 예습, 복습을 비롯한 학교 공부를 별로 시키지 않았다(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권한 방법은 아니다). 큰 아들이 워낙 책 읽기를 좋아하고 수 개념도 좋은 편이라, 나도 그랬듯 학교에서 배운 걸 알아서 공부하고 있겠지 생각했었다. 그러나 중학생이 되었을 때 공부 습관이 들지 않은 총명한 아들은 이미 패배감에 젖어 있었다. 아들보다 당황한 건 나였다. 나는 도무지 아들의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들은 몹시 영민했고 단지 노력하지 않을 뿐이었기에 지금부터라도 예습, 복습을 하면 얼마든지 성적을 올릴 수 있어 보였다. 그러나 아들은 그렇게 하려는 것 같지 않았다. 이런 갈등은 아들이 고2가 될 때까지 계속 되었다. 성적은 두 번째 문제이고 주체적이고 성실한 태도가 부족한 것에 우리 부부는 큰 실망을 하였다. 그러나 아이를 공부로 학대하고 싶지 않았다. 비정상적인 경쟁이나 선행학습에 동조하고 싶지 않았다. 한국 사회에서 자리 잡으려면 학벌이 따라와야 한다는 속물 같은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에게 이런 성취에 대한 욕망과 불안이 있는데, 아이에게 주체적으로 그것을 성취하라고 포장하는 것은 아닐까’ 수없이 되돌아보았다. |
성실했지만 진도를 따라가기 힘든 둘째 둘째는 더 가망이 없었다. 소심하고 섬세한 둘째 딸은 초등 4학년 말부터 아프기 시작하여 중1까지 치료를 받았고 그 이후에도 2-3년간 체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코로나로 영상 수업을 하고 방에서 뭘 하는지 꼼지락대는 딸을 ‘그저 살아만 있어도 감사하자, 건드리지 말자’ 했다. 예민한 둘째와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고1이 되자 학원을 보내 달라는 안달에 국어, 영어, 수학 학원을 보냈다. 아이는 성실했으나 진도와 숙제를 따라가기 힘들어 했다. 8개월간의 학원 체험은 그렇게 끝났고 고2가 된 아이는 체력도 눈에 띄게 좋아지고 친구도 많이 생겼다. 그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
학교 가는 것도 힘든 셋째 셋째 아들은 초등학교 때 공부라는 걸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지면상 다 하기 어렵지만 학교 가는 것도 힘든 아이였다. 아이로 인한 마음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이는 초등학교를 지나 중학교에 갔고, 성적은 좋지 않으나 성실하고 배려심 있는 학생이라는 담임 선생님의 말에 안심하고 그게 어디냐며 감사했다. 그리고 빵을 만들고 싶다는 아이의 적극적인 의지로 특성화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
감사와 절망이 반복되는 넷째 넷째 딸 역시 공부를 잘 못한다. 매일 내가 숙제를 봐 주는데 한숨이 절로 나온다. 중2인데 초등학교 단어도 모른다. 한글도 영어도…. 매일이 야단과 후회, 자책과 격려, 감사와 실망의 연속이다. 아주 버라이어티하다.
공부는 초등학교 때 습관이 잡혀야 하는구나 자주 후회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이 닦고 가방 챙기는 등 기초 생활 습관이 잡히고, 고학년이 되기 전 예습, 복습을 하는 습관을 시작하여 어느 정도 습관이 잡혀야 하는구나. 나 때는 학교 숙제가 많고 기초 문해력 교육이 많아, 지루해하는 아이도 있었지만, 학교 교육을 성실히 따라가기만 하면 성실과 기초 지식을 다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숙제도 없고 창의 교육이 많다보니 학교 교육만으로 그런 걸 익히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모두 실패했다, 성적에 있어서. |
바른 길로 가면, 자녀의 성취도 따라올 줄 알았다 주체적이고 그래서 자기 성취도 어느 정도 따라 오고, 부모와 관계도 괜찮은 그런 것을 꿈꾸었던 건가. 바른 길로 가면 그렇게 되리라 믿었던 것 같다. 나는 바른 길로 가지 못한 것인가. 자녀를 키우는 과정은 실패와 시도의 연속이었다. 나는 그 과정에서 나의 교만과 착각과 무지를 보았고 그렇게 평범해졌다. 초등학교 때 공부 습관을 잡지 못한 덕에 아이들은 패배감과 위축감과 불안이 무엇인지 중고등학교 내내 경험했다. 성적이 권력인 학교 안에서 ‘낮은’ 성적으로 어떻게 자존심을 지키고 생존할지 고민해야 했고, 또한 그것에 다치는 마음을 회복시키기 위해 분투했다. 공부만 잘하면 이 모든 어려움이 사라질 거라는 환상도 가졌고 ‘그게 다가 아닐 거’라는 자기 위로도 하였다. 아이들의 혼란과 힘듦을 보면서 같이 혼란해하고 같이 힘들었다. 내가 더 잘했어야 한다는 후회도 많았고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도 많았다. 어쭙잖은 사회의식으로 아이들 앞길을 막은 건가 자책도 했고 자기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말로 공부하기를 강요하기도 했고 '20살이 되면 집 나가는 거야.' 협박도 했다. |
공부 잘하는 아이가 절대 알 수 없는 것 그러나 지금 나는, '대세에 지장 없다.'라고 자신에게 말해 준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철이 들었다면 그것대로 좋은 것이고, 공부 습관을 잘 잡아 주는 엄마를 만났다면 그것도 좋은 것이다. 또한 아이들이 중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 못하면, 그것도 그것대로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부를 못한 기간이 있는 아이는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 공부를 잘했던 아이는 절대 알 수 없는 그것을 알고 그것을 겪었다. 큰 아들은 고2가 돼서야 본격적으로 공부하여 자기가 원하는 진로의 대학을 갔고, 둘째는 제발 시켜달라던 재수를 하면서 진짜로 공부를 한다. 셋째 아들은 이제 겨우 ‘자기 책상 쓰레기 버리기’ 생활 습관이 잡히는 수준이지만 열심히 빵을 만들고 있고, 넷째는 야단을 맞아도 ‘엄마가 날 위해 공부를 가르쳐 주는 거야.’라고 말한다. 일부러 느리게 가는 길, 잘 못하는 길을 찾아가지는 않지만 애를 썼어도 느리게 가기도 하고 잘 못 가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기만 한 아이들은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을 알게 된 것처럼, 나도 자식이 잘만 큰 부모는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비약이긴 하지만 '어차피 나중에 다 잘될 테니 젊어서 잘 안 되는 것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대세 지장 없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
어차피 결론은 해피엔딩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둘째가 재수를 하고도 성적이 좋지 않을 수도 있고, 첫째가 일하다 다칠 수도 있고, 셋째가 특성화고를 나왔다고 차별을 받을 수도 있다. 지금도 주체적일 때보다 주체적이지 못할 때가 더 많고 자율적이기보다 타성에 젖을 때가 더 많은 아이들이다. 그러나 ‘그것도 나쁘지 않아, 잘만 되면 지루하지, 어차피 맨 뒤에 해피엔딩이 될 거야. 우리는 이걸 통과할 거야.’ 이런 믿음이 좀 생겼다. 누구는 종교의 힘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누구는 '좀 사시나 보죠.' 할 수도 있다. 그래도 나름 만 23년차 네 아이의 육아 경력으로 말하자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무엇이 가장 좋은 길인지 확신할 수는 없어도, 더 나은 길로 가고자 애쓰는 동안은 조금씩 그 방향으로 간다’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과 더 나은 길로 가고자 애쓰고 있다. 한시도 그 노력을 하지 않은 적이 없다. 그러기에 나와 아이들은 나아질 것이다. |
아이들을 통해 진정한 길을 만나다 여기까지 우리 지역 모임의 친구들과 함께 왔다. 코로나 이후 공식적인 모임은 사라졌지만 지역모임에서 만난 2명과는 그 이후에도 만남을 이어 가고 있다. 만난 지 10여 년, 분명 이들은 나에게 큰 힘이다. 우리는 자녀를 키우는 이 시간들이 나를 키우는 시간이었음을 이해했고 서로 상의하고 서로 격려했다. 이 친구들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좋은 강의들과 함께 나에게 준 큰 도움이다. 둘째가 아프기 직전, 정확히는 둘째가 진단받기 4일 전, 나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길을 찾다 길이 된 사람들”이란 강의의 사회를 맡았었다. 그 날은 첫 강의였고 강사는 우리나라 인공위성을 만드는 연구소에서 일하시던 멋진 아버지셨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아이가 선천성 질환을 가지고 태어나면서 인공위성 대신에 환자와 병원 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로 방향을 바꾸신 분이었다. 강의를 다 듣고 마지막 멘트에 나는 이런 말을 했었다. “우리는 길을 찾다가 아이들을 통해 전혀 알지 못하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우리는 진정한 길을 만나고 길을 만들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 덕분에 우리는 그런 멋진 사람이 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같습니다’를 연발한 그 멘트는 그 당시 나에게, 사실인 것 같으나 아직 사실인지 다 확인하지 못한 희미한 그것이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 나는 그것이 사실임을 확신한다. 나의 육아는 실패와 갈등의 연속이었지만, 나는 아이들 덕분에 만난 예기치 않은 일들을 통해 진정한 길을 찾았고, 길을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 ‘같습니다’가 확신이 되면서 나는 육아에 자신은 잃었지만,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아는 사람이 되었다. 아이들과 사랑하고 있는 이 시간, 우리가 같이 성장하고 인생을 나누는 이 시간이 내가 가고 있는 길이며, 또한 도달해야 할 곳이다. |
*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함께 하고픈 선생님을 언제나 환영합니다. 지역등대 모임과 노워리스쿨 강의를 신청해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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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교육에 가장 좋은 길이 있을까?
사실 공모전에 뭔가를 쓸 자신이 있는 건 아니었다. 권유를 받고 든 처음 생각은 '이제 자녀교육에 자신을 잃었는데…'였다. 한때 이렇게 아이를 키우면 되겠다 자신한 적이 있었다. 희미한 곳에서 길을 발견한 듯 점점 더 뚜렷해지는 확신에 기뻤던 적도 있었다. 결과가 나오는 듯도 했고, 그래서 뿌듯함과 자부심에 들뜬 적도 있었다.
그러나 큰 아이가 대학교 4학년이 된 지금, 자녀 교육이란 특별한 방법이 없는 것 같다.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잃었고 아이가 자랑할 만한 아이로 클 거라는 자신도 잃었다. 아니 ‘그런 자신감은 그리 의미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말일 것이다.
나의 어린 시절과는 달랐으면
큰 아들이 6살, 다니던 교회 대예배 시간에 송인수 선생님(사교육걱정없는세상 설립자)이 오셔서 특강을 하셨다. 담임 목사님이 설교 대신 주신 시간이었다. 담임 목사님이 이미 큰 감동을 받고 내주신 시간이었을 터, 나도 큰 감동을 받았고 이전에 없던 인터넷과 초경쟁 시대에서 어디로 가야하나 고민하던 내게 희망이 되는 시간이었다. 어린 시절 엄마와 의사소통이 잘 안 되고 성취 압박을 많이 받던 나는 아이들과 좀 더 나은 관계를 갖고 싶었고, 아이들이 스스로 성취하는 기쁨을 느끼는 이상적인 상황을 꿈꿨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나에게 안내자가 되어 줄 것 같았다.
우리 부부는 ‘경쟁으로 죽어 가는 아이들이 없는 세상’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단체의 목적에 동의해서 많은 기부를 했다. 우리는 그것을 기부가 아니라 투자라고 생각했고, 더 나아진 세상에서 다른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이 그 수혜를 받기 원했다. 기부를 하고 단체의 행사에 아이들과 참석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나와는 달리 확신에 차 있어 보이는 그들을 보면서 나도 확신을 얻기를 바랐다. 좋은 길이 있을 것이고 단지 그 길을 찾지 못한 것뿐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원래 모든 문제에 길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자녀 교육도 뭔가 가장 좋은 길이 있다고, 찾기만 하면 된다고 길 찾기에 열심을 냈다. 그러나 아이들이 자랄수록 나는 더 큰 혼란을 맞이했다.
총명했지만 성실한 태도가 부족한 첫째
엄마의 압박이 힘들었던 나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공부를 접하게 하고 싶었고 경쟁을 줄여 주고 싶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방향도 그러했기에 나와 잘 맞았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 예습, 복습을 비롯한 학교 공부를 별로 시키지 않았다(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권한 방법은 아니다).
큰 아들이 워낙 책 읽기를 좋아하고 수 개념도 좋은 편이라, 나도 그랬듯 학교에서 배운 걸 알아서 공부하고 있겠지 생각했었다. 그러나 중학생이 되었을 때 공부 습관이 들지 않은 총명한 아들은 이미 패배감에 젖어 있었다. 아들보다 당황한 건 나였다. 나는 도무지 아들의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들은 몹시 영민했고 단지 노력하지 않을 뿐이었기에 지금부터라도 예습, 복습을 하면 얼마든지 성적을 올릴 수 있어 보였다. 그러나 아들은 그렇게 하려는 것 같지 않았다. 이런 갈등은 아들이 고2가 될 때까지 계속 되었다.
성적은 두 번째 문제이고 주체적이고 성실한 태도가 부족한 것에 우리 부부는 큰 실망을 하였다. 그러나 아이를 공부로 학대하고 싶지 않았다. 비정상적인 경쟁이나 선행학습에 동조하고 싶지 않았다. 한국 사회에서 자리 잡으려면 학벌이 따라와야 한다는 속물 같은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에게 이런 성취에 대한 욕망과 불안이 있는데, 아이에게 주체적으로 그것을 성취하라고 포장하는 것은 아닐까’ 수없이 되돌아보았다.
성실했지만 진도를 따라가기 힘든 둘째
둘째는 더 가망이 없었다. 소심하고 섬세한 둘째 딸은 초등 4학년 말부터 아프기 시작하여 중1까지 치료를 받았고 그 이후에도 2-3년간 체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코로나로 영상 수업을 하고 방에서 뭘 하는지 꼼지락대는 딸을 ‘그저 살아만 있어도 감사하자, 건드리지 말자’ 했다. 예민한 둘째와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고1이 되자 학원을 보내 달라는 안달에 국어, 영어, 수학 학원을 보냈다. 아이는 성실했으나 진도와 숙제를 따라가기 힘들어 했다. 8개월간의 학원 체험은 그렇게 끝났고 고2가 된 아이는 체력도 눈에 띄게 좋아지고 친구도 많이 생겼다. 그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학교 가는 것도 힘든 셋째
셋째 아들은 초등학교 때 공부라는 걸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지면상 다 하기 어렵지만 학교 가는 것도 힘든 아이였다. 아이로 인한 마음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이는 초등학교를 지나 중학교에 갔고, 성적은 좋지 않으나 성실하고 배려심 있는 학생이라는 담임 선생님의 말에 안심하고 그게 어디냐며 감사했다. 그리고 빵을 만들고 싶다는 아이의 적극적인 의지로 특성화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감사와 절망이 반복되는 넷째
넷째 딸 역시 공부를 잘 못한다. 매일 내가 숙제를 봐 주는데 한숨이 절로 나온다. 중2인데 초등학교 단어도 모른다. 한글도 영어도…. 매일이 야단과 후회, 자책과 격려, 감사와 실망의 연속이다. 아주 버라이어티하다.
공부는 초등학교 때 습관이 잡혀야 하는구나 자주 후회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이 닦고 가방 챙기는 등 기초 생활 습관이 잡히고, 고학년이 되기 전 예습, 복습을 하는 습관을 시작하여 어느 정도 습관이 잡혀야 하는구나. 나 때는 학교 숙제가 많고 기초 문해력 교육이 많아, 지루해하는 아이도 있었지만, 학교 교육을 성실히 따라가기만 하면 성실과 기초 지식을 다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숙제도 없고 창의 교육이 많다보니 학교 교육만으로 그런 걸 익히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모두 실패했다, 성적에 있어서.
바른 길로 가면, 자녀의 성취도 따라올 줄 알았다
주체적이고 그래서 자기 성취도 어느 정도 따라 오고, 부모와 관계도 괜찮은 그런 것을 꿈꾸었던 건가. 바른 길로 가면 그렇게 되리라 믿었던 것 같다. 나는 바른 길로 가지 못한 것인가.
자녀를 키우는 과정은 실패와 시도의 연속이었다. 나는 그 과정에서 나의 교만과 착각과 무지를 보았고 그렇게 평범해졌다. 초등학교 때 공부 습관을 잡지 못한 덕에 아이들은 패배감과 위축감과 불안이 무엇인지 중고등학교 내내 경험했다. 성적이 권력인 학교 안에서 ‘낮은’ 성적으로 어떻게 자존심을 지키고 생존할지 고민해야 했고, 또한 그것에 다치는 마음을 회복시키기 위해 분투했다.
공부만 잘하면 이 모든 어려움이 사라질 거라는 환상도 가졌고 ‘그게 다가 아닐 거’라는 자기 위로도 하였다. 아이들의 혼란과 힘듦을 보면서 같이 혼란해하고 같이 힘들었다. 내가 더 잘했어야 한다는 후회도 많았고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도 많았다. 어쭙잖은 사회의식으로 아이들 앞길을 막은 건가 자책도 했고 자기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말로 공부하기를 강요하기도 했고 '20살이 되면 집 나가는 거야.' 협박도 했다.
공부 잘하는 아이가 절대 알 수 없는 것
그러나 지금 나는, '대세에 지장 없다.'라고 자신에게 말해 준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철이 들었다면 그것대로 좋은 것이고, 공부 습관을 잘 잡아 주는 엄마를 만났다면 그것도 좋은 것이다. 또한 아이들이 중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 못하면, 그것도 그것대로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부를 못한 기간이 있는 아이는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 공부를 잘했던 아이는 절대 알 수 없는 그것을 알고 그것을 겪었다.
큰 아들은 고2가 돼서야 본격적으로 공부하여 자기가 원하는 진로의 대학을 갔고, 둘째는 제발 시켜달라던 재수를 하면서 진짜로 공부를 한다. 셋째 아들은 이제 겨우 ‘자기 책상 쓰레기 버리기’ 생활 습관이 잡히는 수준이지만 열심히 빵을 만들고 있고, 넷째는 야단을 맞아도 ‘엄마가 날 위해 공부를 가르쳐 주는 거야.’라고 말한다.
일부러 느리게 가는 길, 잘 못하는 길을 찾아가지는 않지만 애를 썼어도 느리게 가기도 하고 잘 못 가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기만 한 아이들은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을 알게 된 것처럼, 나도 자식이 잘만 큰 부모는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비약이긴 하지만 '어차피 나중에 다 잘될 테니 젊어서 잘 안 되는 것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대세 지장 없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어차피 결론은 해피엔딩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둘째가 재수를 하고도 성적이 좋지 않을 수도 있고, 첫째가 일하다 다칠 수도 있고, 셋째가 특성화고를 나왔다고 차별을 받을 수도 있다. 지금도 주체적일 때보다 주체적이지 못할 때가 더 많고 자율적이기보다 타성에 젖을 때가 더 많은 아이들이다. 그러나 ‘그것도 나쁘지 않아, 잘만 되면 지루하지, 어차피 맨 뒤에 해피엔딩이 될 거야. 우리는 이걸 통과할 거야.’ 이런 믿음이 좀 생겼다.
누구는 종교의 힘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누구는 '좀 사시나 보죠.' 할 수도 있다. 그래도 나름 만 23년차 네 아이의 육아 경력으로 말하자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무엇이 가장 좋은 길인지 확신할 수는 없어도, 더 나은 길로 가고자 애쓰는 동안은 조금씩 그 방향으로 간다’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과 더 나은 길로 가고자 애쓰고 있다. 한시도 그 노력을 하지 않은 적이 없다. 그러기에 나와 아이들은 나아질 것이다.
아이들을 통해 진정한 길을 만나다
여기까지 우리 지역 모임의 친구들과 함께 왔다. 코로나 이후 공식적인 모임은 사라졌지만 지역모임에서 만난 2명과는 그 이후에도 만남을 이어 가고 있다. 만난 지 10여 년, 분명 이들은 나에게 큰 힘이다. 우리는 자녀를 키우는 이 시간들이 나를 키우는 시간이었음을 이해했고 서로 상의하고 서로 격려했다. 이 친구들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좋은 강의들과 함께 나에게 준 큰 도움이다.
둘째가 아프기 직전, 정확히는 둘째가 진단받기 4일 전, 나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길을 찾다 길이 된 사람들”이란 강의의 사회를 맡았었다. 그 날은 첫 강의였고 강사는 우리나라 인공위성을 만드는 연구소에서 일하시던 멋진 아버지셨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아이가 선천성 질환을 가지고 태어나면서 인공위성 대신에 환자와 병원 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로 방향을 바꾸신 분이었다. 강의를 다 듣고 마지막 멘트에 나는 이런 말을 했었다.
“우리는 길을 찾다가 아이들을 통해 전혀 알지 못하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우리는 진정한 길을 만나고 길을 만들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 덕분에 우리는 그런 멋진 사람이 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같습니다’를 연발한 그 멘트는 그 당시 나에게, 사실인 것 같으나 아직 사실인지 다 확인하지 못한 희미한 그것이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 나는 그것이 사실임을 확신한다. 나의 육아는 실패와 갈등의 연속이었지만, 나는 아이들 덕분에 만난 예기치 않은 일들을 통해 진정한 길을 찾았고, 길을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 ‘같습니다’가 확신이 되면서 나는 육아에 자신은 잃었지만,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아는 사람이 되었다. 아이들과 사랑하고 있는 이 시간, 우리가 같이 성장하고 인생을 나누는 이 시간이 내가 가고 있는 길이며, 또한 도달해야 할 곳이다.